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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대기자의 투데이]제2건국의 조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여러번 죽었던 이 몸이 하느님의 은혜와 국민의 보호로 지금까지 살아서 오늘 이같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서게 되어 한편 감격스럽지만 또 한편으로는 감당키 어려운 책임감에 두려운 생각을 금할 수 없습니다. 기쁨이 극에 달하면 웃음이 다하여 눈물이 된다는 것은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

이 감격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대통령 취임식날의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인가.

아니다.

1948년 이승만 (李承晩) 의 초대 대통령 취임식 연설의 일부를 표현만 오늘에 맞게 약간 바꾼 것이다.

왜 이승만인가.

왜 그런지 마키아벨리의 말을 들어 보자. 마키아벨리는 1531년에 쓴 '담론' 에서 국가나 종교단체 같은 조직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시작 (beginning) 으로 돌아감으로써 거듭나야 장수 (長壽) 한다고 말했다.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것처럼 조직이 번영해도 나이를 먹으면 구성원들은 타성에 빠지고, 그것이 국난을 부를 수도 있다.

시작할 때의 각오와 감동으로 자주 돌아가는 것이 타성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제2의 건국운동도 50년전 건국 (시작) 당시의 감동과 결의 (決意) 로 돌아가 각오를 새로이 하자는 취지로 이해한다.

이승만도 취임사에서 지역갈등을 경계하고 공정한 인사를 역설하고, 보편적인 세계주의를 강조했다.

그가 경영자들은 노동자들을 이용만 하지 말고 노동자는 자본가를 해롭게 하지 말라고 한 것은 오늘의 노사관계를 예견한 말 같이 들린다.

제2건국운동이 시련을 맞고 있는 것은 이 운동을 기획하는 사람들의 자업자득이다.

그들의 구상은 욕심만 앞서고 체계적인 준비가 부족하다.

1백대 과제에는 정부 부처가 할 일이 많이 들어 있고, 의식과 생활개혁 같은 것은 오랜 세월에 걸친 시민운동으로 추진할 성격임을 간과했다.

운동의 주체도 민관 공동이라고 했다가 정부와 시민단체와 비조직 시민들의 3두체제가 거론되기도 한다.

비조직 시민들의 어떤 사람들을 어떻게 참여시킬 것인가.

정부의 지원을 노려 우후죽순 같이 등장할 시민단체들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조직을 시.군.구 단위까지 확대할 경우 많은 폐해가 예상된다.

명함을 갖고 배지를 단 사람들이 지역사회의 새로운 권력자로 행세하면서 지방자치단체의 관리들과 주민들을 괴롭히지 않는다는 보장은 있는가.

우리는 도덕적으로 너무 퇴보했다.

우물안 개구리 같이 물질적 풍요가 우리를 자만에 빠지게 만들었다.

지위가 높거나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은 그들의 신분에 맞는 도덕적인 의무 (노블레스 오블리즈) 를 외면하고 산다.

그래서 혜택받지 못한 사람들이 결과의 평등을 과도하게 요구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런 정신적 허탈상태가 금융위기의 원인 (遠因) 이다.

우리는 집단으로 거듭나는 국민운동을 필요로 한다.

영화 '백 투 더 퓨처' 에서 주인공 마티는 30년전으로 되돌아가 현재의 불만스런 환경을 고쳐가지고 온다.

제1공화국 출범때의 각오와 감동으로 돌아가 그 때 이후의 과거에 대한 반성 위에 오늘의 부조리를 개혁한다고 제2건국위의 점수가 깎이지 않는다.

개혁운동은 관료와 엘리트집단이 위에서 사회공학적 (social engineering) 으로 추진할 수는 없다.

의식개혁은 더욱 그렇다.

국민의 광범위한 참여가 이 운동의 성패를 좌우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운동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중요하다.

정부가 할 일은 정부가, 시민단체가 할 일은 시민단체가 하게 해 제2건국위의 의제를 대폭 축소조정해야 한다.

그러면 예산도 크게 줄어든다.

청와대 정무비서실의 참여로 이 운동의 순수성이 의심받는다면 정무비서들은 주저하지 말고 빠져야 한다.

조직을 중앙으로 한정해 완장부대의 발호를 막아야 한다.

의식과 생활개혁이 우선돼야 한다는 데 합의가 이뤄진다면 이 운동의 범위와 방향과 속도는 스스로 분명하지 않은가.

(김영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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