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개방20년 대륙의 용틀임]3.長征세대와 電腦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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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린 (吉林) 성 지린시의 우징구이 (吳景貴) . 해마다 모범 노동자로 뽑히던 그는 경기가 나빠지자 90년부터 택시 운전기사로 나섰다.

마오쩌둥 (毛澤東) 시대의 멸사봉공 우상 레이펑 (雷鋒) 을 존경하는 그는 스스로 규칙을 정했다.

인민에게 봉사한다는 정신으로 군인과 혁명열사의 자녀, 장애인 등 세 부류의 손님에게서는 차비를 받지 않기로 했다.

덕분에 그의 택시는 '레이펑 택시' 로 불리게 됐다.

그러나 요즘 그의 봉사정신은 상당수 젊은 세대로부터 '미친 짓' 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한 젊은 청년이 다리를 절며 그를 부르기에 공짜로 태워줬더니 목적지에 도착, 내려서는 보란듯이 깡충깡충 뛰며 그를 놀리는 게 아닌가.

46위안의 요금이 나온 한 처녀는 나중에 주겠다며 주소가 적힌 쪽지만을 남겼다.

주소는 물론 가짜였다.

거리에서 그녀를 다시 발견한 吳가 차비를 요구하자 "레이펑을 배운다는 사람이 남의 집 처녀 궁둥이만 쫓아다니냐" 는 면박이 돌아왔다.

마오쩌둥 시대의 이상적인 중국인상 (像) 이 젊은 세대들로부터는 외면을 넘어 한낱 조롱거리로 전락한 것이다.

개혁개방 20년의 물결은 청년들의 가치관을 바꿔버렸다.

특히 개인적인 부 (富) 의 추구와 관련, 장정 (長征) 의 노년세대와 '뎬나오 (電腦 = 컴퓨터) 문화' 로 대표되는 신세대간엔 의식의 차가 엄청나다.

베이징 (北京) 시내 신위안리 (新源里) 아파트 단지에는 가라오케에서 손님과 함께 춤추고 술 마시고 노래하는 이른바 '삼배 (三陪 = 陪舞.陪酒.陪唱) 소저' 들이 많이 살고 있다.

새벽에 귀가해 대낮까지 늦잠자는 이들 호스티스는 마을 할머니들에겐 눈엣가시다.

그러나 삼배소저들은 거꾸로 할머니들을 이해할 수 없다.

"별다른 기술도 없는 우리가 손쉽게 돈벌 요량으로 이 일을 하는 게 무슨 큰 잘못이냐" 고 항변한다.

장정의 어려움을 극복한 정신으로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노년세대의 타이름은 마시고 즐기면서 가라오케의 음향기기 리모컨을 몇 번 누르는 것으로 돈을 버는 처녀들의 귀엔 들리지 않는다.

세대간의 취향 차이도 뚜렷하다.

북한이 자랑하는 혁명가극 '꽃 파는 처녀' 가 공연된 지난달 24일의 베이징 전람관. 중년이상의 중국인들로 초만원을 이뤘다.

개혁개방전인 73년, 이렇다할 놀이문화가 없던 시절에 상영돼 중국대륙을 울렸던 가극이다.

애잔한 선율이 압권이지만 지주계급 타파라는 '고리타분' 한 소재에 젊은 세대들은 등을 돌렸다.

반면 3일후인 27일 베이징 체육관에서 열린 여가수 왕페이 (王菲) 의 리사이틀엔 청소년 인파가 엄청나게 몰려 그야말로 베이징이 떠나갈 정도의 혼잡을 빚었다.

지난 20년간 끊임없이 불어닥친 개방바람은 노년.청년층 두 세대의 의식을 모든 면에서 갈라 놓았다.

그러나 이 정도는 아직 대지진을 앞둔 미진 (微震)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80년 시작된 독생자 (獨生子) 시대, 즉 한 자녀 갖기 운동 결과 부모의 과보호 아래 키워진 이른바 '소황제 (小皇帝) 세대' 들에 의한 시대가 아직은 본격화되지 않은 탓이다.

극단적 개인주의로 표방되는 이들 소황제 세대는 올해 처음 대학의 문을 두드렸다.

이들이 청년층의 주류를 이루는 21세기초. 중국사회는 가치관은 물론 가족.대인관계 등 모든 면에서 지각변동과도 같은 대변혁의 바람에 휩쓸리게 될 공산이 크다.

베이징 = 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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