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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오페라 일본인이 첫무대 올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9면

올해는 한국오페라 50주년이 되는 해. 48년 조선오페라협회가 시공관에서 상연한 '춘희 (라 트라비아타)' 를 기준으로 한 계산이다.

하지만 외국인에게 작곡을 위촉한 최초의 창작 오페라가 초연된지도 올해가 50년이 된다.

48년 11월20일 일본 도쿄 (東京) 유라쿠자 (有樂座)에서 초연된 다카키 도로구 (高木東六.94) 의 '춘향' 은 현제명 작곡의 '춘향전' (1950년) 보다 2년 앞선 작품이다.

'한국 창작오페라사' 로 최근 미국 UCLA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공은아 (34) 씨는 박사논문에서 "한국 정부나 민간인이 위촉해 초연한 제임스 워드의 '순교자' (70년) , 카를로 메노티의 '시집가는 날' (88년) 이나 니콜로 이우콜란노의 '이순신' (98년) 과 마찬가지로 다카키의 '춘향' 도 창작 오페라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 고 주장했다.

다카키의 '춘향' 은 재일교포 1만8천명이 기금을 조성, 작곡자에게 2년간의 생활비를 보장해주고 위촉한 작품. 주연 이몽룡 역 (役)에는 한국 출신의 테너 김영길 (金永吉) 이 맡았고 나머지 배역과 지휘는 일본인이 맡았다.

공씨는 기록상으로만 남아있던 오페라 '춘향' 의 피아노 스코어를 96년 도쿄 (東京) 예대 도서관에서 찾아냈고 요코하마에 살고있는 작곡자를 만나 초연 당시의 생생한 얘기를 들었다.

다카키는 50년대 일본과 한국에서 크게 히트했던 노래 '미즈이로 (水色) 의 왈츠' 의 작곡자. 일찍이 프랑스로 유학, 파리음악원에서 뱅상 댕디를 사사했다.

대본 작가는 무라야마 도모요시 (村山知義.1901~77) .유치진 선생에게 '춘향전' 을 소개받고 창극 '춘향전' 도 관람한 그는 이 작품을 연극으로 만들어 38년 한국과 일본서 순회 공연을 갖기도 했다.

일본서 이 연극을 접한 다카키는 40년 오페라 '춘향' 을 완성했으나 45년 악보가 소실되고 말았다.

이듬해 재일교포의 위촉으로 다시 작곡에 착수한지 2년만에 완성한 것. '아리랑' '도라지' '양산도' 등의 한국 민요가 전편에 걸쳐 흐르고 있으며, 장고와 북 등 국악기를 관현악 편성에 포함시켰다.

도쿄 초연 당시 7일간 13회 상연된 '춘향' 은 연일 만원사례를 이뤘고 11월25일 공연은 NHK라디오로 생방송되기도 했다.

이 작품은 현제명 (50년).장일남 (66년).박준상 (86년).김동진 (97년) 등 해피 엔딩 '춘향전' 과는 달리 춘향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변사또의 모진 매질 때문에 이몽룡의 품에 안겨 끝내 죽는것. 여주인공의 죽음은 낭만주의 오페라의 전형이다.

당시 일본인과 재일교포가 비슷한 비율로 객석을 채웠는데 춘향이 죽는 대목에서 재일 교포들은 폭소를 터뜨렸다는 후문. 공씨는 "영어 가사 번역이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세계 무대를 겨냥한 것" 이라고 말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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