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종착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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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호 15면

“저의 인생은 끝났습니다!”
30대 중반 남성 K씨의 표현에는 위기감이 묻어났다. 그는 스스로 심각한 발기부전이라 여겨 극도의 절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부부의사가 쓰는 性칼럼

“해볼 방법은 다 해봤습니다. 발기약도, 발기주사도 모두 효과가 없는데, 고쳐질 거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이유인즉 그는 시판 중인 모든 발기약과 주사를 권유받고 사용해 봤지만 충분한 효과를 얻지 못했다. 그때마다 돌아온 답변은 “발기부전이 심해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성생활을 원한다면 음경 안에 인공보형물을 넣어 발기를 대신하는 최후의 방법뿐이라고 들었다 한다.

이런 상황인지라 더 이상의 치료가 무의미하다고 여겨왔던 K씨. 아내의 고집에 마지못해 필자를 찾아왔지만, 그는 필자의 진료실이 ‘종착역’이라 표현할 뿐 치료 개선을 도무지 믿지 않았다. 이미 그에겐 ‘발기약에 반응이 없으면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발기부전’이란 인식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과장된 생각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환자들이나 그렇게 생각하게 만든 일부 의료진이 반성해야 할 대목일 뿐, 발기약에 반응이 없다 해서 무조건 치료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동안 K씨의 발기부전에 대한 잘못된 접근은 원인 교정을 제쳐두었다는 점에 있었다. 근본적인 원인을 바로잡지 않은 상태에선 아무리 발기약을 먹어봤자 발기 기능이 개선되지 않거나 기껏해야 인공적인 발기를 할 수 있는 게 전부다.

K씨가 필자의 진료실을 두고 ‘종착역’이라 말한 점이 필자의 치료 의지를 자극했다. 그는 신경계와 호르몬, 혈관, 심리적 요소에서 두루 문제가 있었다. 원인이 여럿인 경우를 ‘복합성 발기부전’이라 하는데, 많은 사람은 원인이 복합적이면 무조건 치료가 더 힘들다고 잘못 생각한다. 하지만 복합성이라 하더라도 각 분야의 원인이 최악이 아니라면 치료 여지가 상당히 많다. 다만 치료자가 각종 원인을 두루 다룰 줄 아는 성의학적 전문성이 있어야 하는데, 특정 분야의 지식만으로는 치료에 한계를 맞을 수밖에 없다. 실제 전문가에겐 단순히 복합적인 경우보다 오히려 어느 한 쪽 영역이 극도로 훼손돼 회복불가능한 단일성 원인의 발기부전이 치료하기 더 어렵다.

특히 극도의 긴장성이 있거나 기타 이유로 교감신경의 항진이 지나치면 발기약의 효능은 제한된다. 즉 심신의 긴장으로 인해 체내에 분비되는 아드레날린이 강력한 혈관수축 작용을 일으키면 발기 기능이 떨어지고, 발기약의 효과마저 제한할 수 있다. 발기약에도 발기 반응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발기약이나 발기주사에만 의존해 인공적인 발기를 시켜왔던 환자도 그 배경 원인이 치료되면 얼마든지 자연발기로 회복될 수 있다. 특히 20~30대 젊은이의 발기부전은 더욱 그러하다.

K씨는 각 원인의 자질구레한 문제가 호전되면서 현재는 발기약 없이도 자연발기가 가능한 건강한 남성이 되었다. 부디 쉽게 구할 수 있는 발기약에만 의존해 제대로 원인을 파악하지도 않은 채 허송세월하지 말길 바란다. 특히 발기약에 효과가 없다고 해서 무조건 심각한 발기부전에 치료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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