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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뒤에도 쇼는 계속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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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지난 시즌 주인공 부부의 이혼 발표라는 다소 황당한 결말로 끝을 낸 ‘존 앤드 케이트 플러스 8(Jon and Kate plus 8)’이 지난 월요일 새로운 시즌을 시작했다. 인공수정으로 여덟 아이를 가진 한 젊은 부부의 일상을 다룬 이 리얼리티 쇼는 당초 좌충우돌 육아일기를 재미있고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내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국내 언론에도 보도된 것처럼 남편 존 고슬린이 밤늦은 시각 다른 여성과 함께 있는 장면이 파파라치들에게 목격되면서 불화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종국에는 결별 수순을 밟았다. 이들이 이혼을 발표한 시즌 5의 마지막 회는 프로그램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올렸다.

새로운 시즌에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 쇼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존과 케이트가 2인용 소파에 나란히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사라졌다는 것. 이번 시즌에서는 각자가 1인용 안락의자에 앉아 따로 인터뷰하는 모습이 방영된다. 또한 두 부부가 번갈아 가면서 아이를 돌볼 뿐 같은 장면에 출연할 일도 사라진다.

이혼이 흠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랑도 아닌 세상, 부부만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여덟 명의 자녀가 주인공이 되는 이 쇼를 수많은 논란 속에 강행하기로 한 고슬린 부부의 뇌 구조가 언뜻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다. 돈 맛을 알아 버린 부모 때문에 죄 없는 아이들만 마음고생을 하게 생겼으니 안타까울 따름.

실제로 일부 시청자는 시즌 5의 방영이 시작될 무렵 이 프로그램의 종영을 요구했다. 삐거덕거리기 시작한 두 부부의 일상이 공개될수록 결국 상처받는 것은 아이들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사실 존은 시즌 4의 종영 이후 더 이상의 프로그램 제작을 원치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아내 케이트는 이런 남편의 바람을 단칼에 거절했다고 한다.

남편 존이 한국계 혼혈인인 까닭에 그동안 한국 언론도 더러 이 가정에 대한 가십성 기사를 보도했으나, 알려진 것처럼 단순히 남편의 바람기 때문에 파경을 맞은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의 부적절한 처신이 이혼의 결정적 단초를 제공했지만, 시즌이 진행되는 동안 이들 부부의 위기를 보여 주는 신호들은 어렵지 않게 포착됐다.

평소 완벽주의자적 기질을 보인 케이트는 존이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걸핏하면 소리를 지르고 마치 아이를 다루듯 꾸짖었다. 케이트의 가모장(家母長)적 태도는 에피소드 중 “숨 좀 작게 쉴 수 없어”라며 짜증스럽게 채근하는 말 한마디에 축약돼 있다. 존은 실직한 뒤 다시 직장을 구할 생각도 않고 집에서 빈둥거리다 보니 어느새 무능력하고 게으른 남편의 표상으로 떠올랐다.

아내의 말에는 아예 귀를 기울이지 않거나 대답을 피했고 그럴수록 아내의 잔소리는 점점 더 심해져 갔다. 남편은 아내와의 소통을 단절한 채 결국에는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으로 현실에서 도피했다.

이 프로그램 게시판의 댓글들을 읽어 보면 “누가 더 잘못했다”는 편 가르기보다는 “슬프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원래는 육아일기에서 시작되었으나 정작 소통의 부재가 어떻게 한 부부를 멀어지게 하는지를 보여 주는 부부 클리닉으로 변질된 셈이다.

김수경 sisikolkol@gmail.com


일간지에서 문화부 기자로 근무하다 현재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에서 유학하고 있다. 전공은 사회학. 음악과 문화 등 대중문화 전반에 폭넓은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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