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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사회혁신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지난 1년간 국제통화기금 (IMF) 한파가 우리나라를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다.

한강의 기적과 88서울올림픽으로 국력을 세계에 과시하고 여행자유화로 웬만한 중산층까지 해외관광을 예사롭게 했던 우리의 자존심이 하루 아침에 사라져 버린 지난 한해였다.

극심한 불경기로 그동안 땀흘려 모아둔 부동산과 금융자산가치는 폭락해 버렸고 2백만명에 가까운 실업자들은 앞날의 희망을 잃어버린 채 거리와 산 속에서 방황하고 있으며 시내의 공원들과 지하철역은 하루가 다르게 노숙자들이 늘어가고 있다.

이러한 민족적 대환란을 당해 온 국민이 대오 (大悟) 각성하고 분연히 떨쳐 일어나야 할 텐데 모두들 살기가 어려워지니까 오히려 극도의 이기심만 창궐 (猖獗) 해 사회 곳곳에 부정과 부패가 만연해 가고 있다.

촌지비리, 고액과외와 입시부정, 법조비리, 건축비리, 정치권과 공무원 부패 등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된 부정과 비리는 가위 성경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의 타락을 연상케 할 정도로 고질화된 느낌이다.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이처럼 뇌물에 찌들고 부패에 무감각해졌을까. 우리 배달민족은 원래 어려울 때 이웃과 상부상조하고 청백리 (淸白吏) 정신과 청빈한 선비의 기강을 기리는 순박한 백성이었지 않았던가.

순수했던 사도 (師道) 는 촌지와 입시부정, 교수채용 비리 등으로 타락했고, 공무원들의 부패는 생계형 비리에서 부자가 되기 위한 축재형 대물림 부정으로 고질화.대형화됐다.

순박했던 우리 사회가 오늘날 이처럼 부패에 찌들게 된 가장 큰 책임은 우리나라 최고 지도층에 있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된 부정부패의 근원은 지난 수십년 동안에 자행된 우리나라 최고 권력층들의 부패 때문이었다.전직 대통령들이 수치스런 감옥생활을 해야 할 불법을 저지르고 또 알려진 것만도 각각 수천억원대의 뇌물을 챙겼으니, 그 주변의 대부분 지도층.권력층 인물들도 숫자만 약간 틀릴 뿐 똑같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뇌물들을 챙겼을 것이다.

지난 수십년간 청와대와 권력기관 종사원, 정치인, 고급공무원, 금융기관 간부들도 윗사람 나쁜 버릇은 더 잘 배워서 얼마나 많은 부정.부패를 저질러 왔을까 짐작이 갈 만하다.

사회가 이처럼 위에서부터 물들어 가니 '악화 (惡貨)가 양화 (良貨) 를 구축한다' 는 그레셤의 법칙대로 정직하고 순박한 사람들과 청백리들은 차차 도태되고 뇌물받아 거드름 피우고 또 눈치 빠르게 상납 잘 하는 파렴치한들만 득세하는 세상이 돼버렸지 않았을까.

우리나라 경제가 국민이 똑똑지 못하고 기업인들이 무능해 국제경쟁력을 잃은 것이 아니라 세력자들과 관료들의 상납고리인 수없는 정부규제들에 옭아매이고 시시때때로 갖다 바쳐야 하는 뇌물로 시달려 왔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외환위기의 직접적인 이유도 정치인들과 경제관료들에게 거액의 뇌물을 상납하고 따낸 엉터리 종합금융회사 등이 빨리 수익을 올리려고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르고 해외단기자금을 무작정 끌어다 러시아와 인도네시아의 정크본드와 중남미의 브래디본드 등 투기성 금융물에 투자했다가 갑자기 국제채권은행들의 부채상환 독촉을 감당할 수 없어 외환위기를 부추기지 않았던가.

앞으로 우리 경제가 IMF위기에서 진정으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된 고질적인 부정부패의 구조를 먼저 척결해야 한다.

그러자면 첫째, 혁신적인 정치권의 개혁을 단행해 국회의원수를 절반 이하로 줄이고 돈 안드는 정치관행을 정립해야 한다.

둘째, 정부규제를 과감히 혁파해 진정한 시장경제가 제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규제로 먹고 사는 중앙과 지방의 무수한 공무원들 숫자를 특별법을 도입해서라도 대폭 축소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현정부의 규제개혁도 또 전 정권들처럼 실패하고 말 것이다.

셋째, 공무원의 관료화를 최소화하고 공무원 비리를 근절키 위해 미국처럼 대폭적으로 기업가나 전문가 출신들을 임기제로 국장급 이상 고위직에 한시적으로 임명해 공무원 사회를 혁신해야 한다.

넷째, 공기업.정부 투자기관.정부 산하기관들을 예외 두지 말고 과감하게 민영화하거나 폐쇄해 공무원들의 문어발식 권한을 차단하고, 다만 공정거래위원회 등 시장경제를 보강하는 기능만 존속시켜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젊은 엘리트들이 다시는 고시공부해서 관료가 돼 출세해

보겠다는 그릇된 꿈을 버리게 하고 그 대신 선진국처럼 국제적인 기업인이나 전문가가 돼 성공해 보겠다는 사회풍토를 정착시켜야 할 것이다.

박윤식(미 조지워싱턴대교수.국제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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