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1백만마리의 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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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개의 조상이 늑대일 것이라는 학설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됐지만 지난해 6월 미국과 스웨덴의 동물진화학자들이 늑대와 개의 유전자를 분석해 매우 유사하다는 결론을 얻음으로써 더욱 확실해졌다.

한데 개의 조상이 과연 늑대라면 우리로서는 흥미로운 점 하나를 추론해 볼 수 있다.

빙하시대 말기 늑대가 인간의 공동수렵 사회에 편입되기까지 사람이 늑대를 잡아먹었다는 종래의 학설이 사실이라면 인간은 일찍부터 개를 먹은 셈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이다.

보신탕을즐기는 사람이 아주 많은 우리로서는 아전인수 (我田引水) 격의 해석일는지 모르지만 원시시대의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먹었을 것이고, 늑대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인간이 가축화된 늑대, 곧 개를 먹지 않게 된 것이 최소한 1만2천년 전부터 가축화된 이래 인간과 개 사이에 존재하는 놀랄만한 긴밀한 관계와 서로간 의사소통의 힘 때문이었을 것이라 생각하기는 어렵지 않다.

사람과 개 사이의 감정이입이 얼마나 긴밀한가 하는 것은 개가 웃기도 한다는 한 실험결과로서 입증된다.

웃음이 끊이지 않는 사람의 가족 속에서 길러진 강아지는 어느 시기에 이르

러 입 주위의 근육을 끌어당겨 기쁜 표정을 짓는 것이 습관화된다는 사실이다.

물론 야생 늑대에 대한 똑같은 실험결과는 실패였다.

그런특성 때문에 인간은 오랜 세월동안 인위적 품종 개발에 진력해 그 품종이 4백여종에 이르게 됐다.

애완견에서 사냥개.군견 (軍犬).인명구조견에 이르기까지 그 쓰임새가 아주 다양해진 것도 품종 개발 덕분이다.

우리나라와 중국 등 일부의 개를 잡아먹는 풍습이 여러나라로부터 비난을 받는 것은 바로 개의 다양한 쓰임새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먹는 개는 물론 그런 개가 아니라 식용으로 별도 사육된 개일 따름이며 우리 고유의 음식문화일 뿐이다.

보건복지부와 업계의 한 관련단체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한햇동안 보신탕과 개소주용으로 소비된 개는 약 96만 마리나 된다고 한다.

국내에서 사육되고 있는 개 가운데 약 43%가 식용으로 처리됐다는 계산이다.

문제는 쓸모있는 개와 단순한 식용 개가 법적으로 구분돼 있지 않아 유익한 개까지 끓는 솥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사람과 개가 함께 신경을 써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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