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조갈량? 고마운 별명이지만 쑥스럽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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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를 7년 만에 1위로 올려 놓은 조범현 감독을 팬들은 제갈량에 빗대 ‘조갈량’이라고 부른다. [김민규 기자]

조범현(49) KIA 감독 앞으로 연일 선물이 배달되고 있다. 4일 팬클럽 ‘KIA 타이거즈 갤러리’에서 자수로 호랑이를 새긴 모시 상의 한 벌을 건네더니 5일에는 팬들의 응원 문구가 담긴 편지가 도착했다. 5일 잠실 KIA전을 앞두고 만난 조 감독은 “팬들이 바라는 걸 아직 해 드리지도 못했는데 큰 선물을 받았다”고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KIA 팬들에게 잊지 못할 선물을 했다. KIA는 5일 현재 선두에 올라 있다. 2002년 9월 12일 이후 6년11개월여 만의 일. KIA 팬들은 모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프로야구 순위표를 확인한다.

◆“어려서부터 지고는 못 살았어”=김성근 SK 감독은 ‘조범현의 눈물’을 기억한다. 김 감독은 “1970년대 후반 충암고 감독 시절이다. 고교대회 8강전에서 끝내기 안타를 맞고 아쉽게 패했다. 포수 조범현이 목 놓아 울더라. 그를 달래 버스에 오르는 데 애를 먹었다. 조범현은 그렇게 승부욕이 넘쳤다”고 회상했다.

김 감독의 말을 전하자 조 감독의 입가에 미소가 스친다. “그 장면을 기억하시네”라며 웃던 그는 “어려서부터 지고는 못 살았다. 표현을 잘 못하는 성격이지만 경기에서 지고 나면 참을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고교 시절 김 감독으로부터 “인사이드 워크가 뛰어났다. 또래 중 앞서 있는 포수”라고 평가받던 조 감독은 화려한 프로 시절을 맛보지 못했다. 결국 11년간(82~90년 OB, 91~92년 삼성) 615경기 출장, 타율 2할1리, 12홈런, 107타점의 기록으로 은퇴했다. 93년 쌍방울 코치로 부임하며 그는 “내가 선수 때 누리지 못한 영광을 제자들에게 맛보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조범현+제갈량은 조갈량=그의 뜻처럼 됐다. 90년대 초반, 쌍방울에서 박경완(SK)을 조련했다. 91년 고졸 신인으로 입단한 박경완은 조 감독의 손을 거쳐 현역 최고의 포수로 성장했다. 박경완은 “체계적으로 포수의 역할을 가르쳐 주시는 분을 처음 만났다. 블로킹 훈련만 하루에 700~1000번을 했다.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 그래도 조 감독님 덕에 포수 역할에 눈을 떴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감독으로서 출발도 상쾌했다. 조 감독은 2003년 SK 감독 부임 첫해, 팀 창단(2000년) 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하지만 2006년 SK가 6위에 그치면서 경질의 아픔을 겪었다.

다시 감독직을 받아 든 것이 2008년. KIA 감독으로 선임되며 새 출발했지만 첫해 성적은 6위였다. “성적을 내지 못하는 감독”이라는 비판이 그를 향했다. 그러나 조 감독은 “성적에 너무 조급해하면 감독을 위해 선수가 무리하는 악영향을 낳는다”고 소신을 지켜 나갔다. 그리고 2009년, KIA는 선두권에 자리 잡았다. 그의 소신을 지켜보던 팬들은 ‘조갈량(조범현+제갈량)’이라는 별명을 선사했다. 조 감독은 “더 좋은 성적을 내신 감독님이 많은데…. 고마우면서도 쑥스럽다”고 말했다.

◆“재계약? 그 생각은 아직”=올 시즌을 끝으로 조 감독은 KIA와 계약이 만료된다. 이런저런 말들이 난무한 상황. 조 감독은 재계약에 대한 질문에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다. 순위 다툼이 한참인 지금 그런 얘기를 꺼내고 싶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하남직 기자 , 사진=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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