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덕의 13억 경제학] 베이징(6) ‘건륭황제, 탄생의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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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은 계속 베이징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번주까지 휴가를 보내고, 다음 주에는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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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륭(乾隆).

청(淸)나라 최고의 전성기 시대를 누린 황제입니다. 강희-옹정-건륭으로 이어 지는 청나라 전성기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하지요. 건륭은 무려 60년 동안 제위에 있었습니다.

그를 둘러싼 탄생의 비밀이 있습니다.

강희대제 시절, 왕자였던 옹정 부인에게 아이가 생겼습니다. 네 번 째 임신이었습니다. 경사 났지요. 부인은 꼭 아들이 탄생하기를 기도했습니다.


▲강희(康熙)

당시 궁궐 한족(漢族)신하 중 한 명도 비슷한 시기 아이를 가졌답니다. 옹정과 한족 신하는 평소에 서로 잘 어울리는 사이였습니다. 산달이 다가왔습니다. 옹정 부인이 먼저 아이를 낳았습니다. 딸이었습니다. 부인은 실망했습니다. 곧 이어 한족 신하 부부가 아이를 낳았습니다. 아들이었습니다.

이를 전해들은 옹정 부인이 퍼뜩 한 꾀를 생각해 냅니다.

옹정 부부는 신하부부를 초대합니다. 와서 식사나 하자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신하부부에게 아이를 보고 싶으니 함께 오라라는 '명령'이 떨어집니다. 신하는 왠지 찜찜했습니다. 그래도 할 수 없지요. 왕자가 부르니 말입니다.

즐겁게 식사를 마쳤습니다. 신하 부인은 잠시 맡겼던 아이를 건네 받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포대기에 쌓인 아이를 본 순간 신하 부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습니다. 아이에게 있었던 '고추'가 없어진 겁니다. 옹정 부부가 아이를 바꿔 치기 한 것이지요. 바꿔 치기 한 그 아이가 바로 건륭 황제였습니다. 건륭은 만주족이 아닌 한족이라는 얘기지요.

옹정이 바꿔 치기 한 그 소년은 건강하게 자랍니다. 옹정은 강희대제에 이어 황제에 올랐고, 옹정은 말년에 바뀌 치기 한 바로 그 아들에게 제위를 넘겼습니다. 24살 때 황제로 오른 그 인물이 바로 건륭황제입니다.

건륭황제는 어느 날 궁녀들이 하는 얘기를 우연히 엿듣습니다. 한 궁녀가 "우리 황제는 한족이래"라며 그 옛날 '바꿔 치기'얘기를 하는 겁니다. 건륭은 궁녀에게 다가갑니다. 궁녀는 얼굴이 노랗게 변했죠. 천기를 누설했으니까 말입니다.

건륭은 그녀를 왕실로 부릅니다. 은밀하게 사냥터 사건의 자초지종을 듣습니다. 그리고는 묻습니다.

"그래 네가 말하는 나의 어머니는 어디에 있느냐"
"예, 옹정제께서 창장(長江)의 어느 곳으로 유배를 보냈다 하옵니다"

건륭황제는 궁녀에게 물러가라고 분부합니다. 그녀가 떠나자 건륭은 친위 호위대원 한 명을 부릅니다.

"저 여인의 뒤를 밟아 목숨을 받아라"

그렇게 건륭 황제 탄생의 비밀을 알고 있는 여인은 죽게 됩니다.

건륭제는 제위에 있으면서 무려 6번이나 대운하를 타고 강남을 순시합니다. 대운하와 창장이 만나는 양저우(揚州)에는 그래서 건륭 황제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건륭제는 아마도 강남 어디엔가 있을 어머니를 찾아 나섰을 겁니다. 건륭황제는 자신을 한족의 후손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한족 문화에 그렇게 관심이 많았겠지요. 그의 시기에 문화융성기를 맞게 된 이유일 겁니다.


▲옹정(雍正)

건륭황제의 탄생에 또 다른 비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 옹정이 어느 날 베이징 북동쪽 여름 휴양지인 청더(承德)에서 사냥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슴이 숲에서 튀어나왔습니다. 옹정이 활시위를 당겼습니다. 명중했습니다. 사슴은 숨을 헐떡이며 넘어졌습니다.

신하들이 달려들어 사슴의 목을 땄습니다. 붉은 사슴 피 한 사발을 옹정에게 바쳤지요. 옹정은 꿀꺽꿀꺽 마셨습니다. 땀이 식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옹정제의 아랫도리가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남성의 힘이 치솟은 것이지요. 사슴 피가 남자 정력에 그렇게 좋다는 군요.

'얘들아, 어디 여자 없느냐. 여자가 필요하다, 여자를 대령하라'

옹정이 갑자기 성욕을 느낀 겁니다. 그는 욕구를 풀어줄 여자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냥터에 여자가 있을 리 없습니다. 신하들은 사냥 몰이꾼을 풀어 여자를 찾았습니다. 드디어 사냥감을 발견했습니다. 오두막집에 살고 있는 한 못생긴 처녀였답니다. 미모를 따질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즉시 황제에게 진상했습니다. 황제는 그 자리에서 여인을 덮쳤습니다.

옹정은 일을 마치고 누어있는 여인을 봤습니다. 너무 못생겨 정나미가 떨어졌답니다. 그는 욕정이 사라진 그 느낌에 실망한 채 궁궐로 돌아왔고, 오두막집 사건을 잊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이 덜컥 아이를 가졌답니다. 처녀가 아이를 가진 것이지요. 이 소문은 베이징 궁궐로 전해졌습니다. 나중에 이를 안 옹정의 아버지이자 당시 황제였던 강희대제가 아이를 궁궐로 데려오도록 했고, 옹정 부인의 4번째 아들로 넣었습니다. 그가 건륭황제랍니다.

지금도 청더에는 당시 옹정이 한 시골여인과 순간적인 사랑을 나눴다고 전해지는 초가집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건륭(乾隆)

건륭 황제의 탄생 비밀은 야사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눈 여겨 봐야 할 것은 '건륭 황제가 한족의 후손이다'라는 얘기가 민간에 나돌았다는 점입니다.

아마 만주족이 느끼고 있던 한족에 대한 콤플렉스가 이런 얘기를 낳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만주족의 친(親)한족 정책이 그런 얘기를 지어내게 했을 수도 있습니다. 만주에서 일어났던 여진족 나라 청은 그렇게 중화세계로 편입됐던 겁니다.

중국에 침입에 정착했던 외부 세력은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선비족이 그랬고, 몽골족이 그랬고, 또 만주족이 그랬습니다. 대륙 문화에 녹아들어간 겁니다.

오늘도 많은 기업들이 중국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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