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프 담배를 문 만년의 유진오(사진)는 이렇게 회고한다. “헌법기초위원회에서는 내가 준비한 안을 내놓으라고 하여 내놓았는데 권승렬씨가 또 하나 안을 내놓아서 안이 둘이 된 셈입니다. 하나는 내가 만든 안이고, 하나는 법전편찬위원회에 내가 제출한 초안을 가지고 주로 권승렬씨가 외국 법전을 참고해서 가감한 것이지요.” 7월 12일 만장일치로 신생 대한민국의 건국헌법은 국회의 심의를 통과해 고고지성(呱呱之聲)을 울렸다. 유진오는 국회의장 이승만이 다음과 같이 말하며 심의 완료의 방망이를 두드렸다고 기억한다. “이 전문을 그대로 통과하는 것을 가(可)하게 여기시면 기립하시오. 이것은 대한민국 헌법 전문 103조를 다 낭독한 대로 꼭 통과하였다는 표적입니다. 한 분도 빠짐이 없으니까 전체가 통과된 것입니다.” 그의 안은 90% 이상 원안대로 채택되었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였던 이승만의 반대에 부닥쳐 그가 꿈꾸었던 권력 구조인 내각책임제는 대통령중심제로 뒤바뀌고 말았다.
정파 간 다툼으로 국정이 난맥상을 보이고 개헌 논의가 봇물 터지듯 다시 일고 있는 오늘, ‘헌법의 아버지’ 유진오가 남긴 고언(苦言)은 아직도 유효하다. “우리나라의 격심한 정쟁의 현상으로 보아서도 이를 완화 또는 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인물이 절대로 필요하며 그와 같은 인물이 없으면 정국은 파국적 단계까지 이를 위험성이 있으므로 실제적 견지로 보아서도 우리나라의 정부 형태가 정쟁에 초연한 원수를 가질 수 있는 의원내각제도로 추이하는 것은 희구할 만한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대통령제에 대한 그의 반론이 틀린 것이 아니었음을 우리 헌정사가 증언한다. 제헌절 61주년을 맞는 오늘, 내각책임제를 꿈꾼 그의 선각이 마냥 그립다.
허동현(경희대 학부대학장·한국근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