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자! 교육여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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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여행은 평생을 되새길 책을 함께 읽는 것과 같다는 이길로·김연숙·이바로·이승곤 가족.

< 황정옥 기자 ok76@joongang.co.kr >

“여행이야 말로 아이들에게 진실되고 살아있는 삶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참교육이죠.” 현직 교사 이승곤(51·교문중 교사)·김연숙(46·장훈고 교사)씨 부부는 방학이면 쌍둥이 아들 이길로·바로(15·수송중3)군을 데리고 세계 각국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런데 이 여행은 단순하지 않다.교육을 위해 철저히 계산된, 특별한 여행준비와 사후활동이 결합된 ‘교육여행’이다. < 송보명 기자 sweetycarol@joongang.co.kr >

출발 전 가이드 북 만들기여
행을 떠나기 전 가장 먼저 할 일은 행선지를 정하는 것. 여행을 떠나기 두 달 전부터 신문과 뉴스 등을 통해 세계의 정세를 파악한다. 각자가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매일 밤 모여 토론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행선지가 결정된다. 목적지가 정해지면 지도를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발칸반도로 떠나기로 했다면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발칸반도 부분을 A4용지에 확대해서 그리는 것. 색칠도 해야 한다. 바다는 파란색으로, 대륙은 나라별로 색깔을 달리 해서 대륙과 바다를 구분하고 행선지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한다. 대륙에 있는 국가의 이름을 다 외우고 각 나라의 수도를 암기하면 비행기를 타기 위한 테스트를 통과한 것이다.

  그 다음엔 온 가족이 안내책자를 만든다.일반적인 가족은 여행지의 정보가 실린 가이드북을 ‘구매’하겠지만 이씨 가족은 ‘제작’한다. 인터넷 검색으로 기후와 문화, 언어 같은 기본정보를 정리한다. 다녀온 사람들의 소감을 수집해 잘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관광지 등의 알짜정보도 추가한다. 여행을 할 때 알아야 할 대화도 현지 언어로 따로 정리해 간단한 문장 정도는 미리 외워둔다.

여행 중에는 역할분담이 필수
이씨 가족의 여행은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끊임없이 발품을 파는 고생길이다. 패키지 투어의 안락함보다는 힘든 경험을 통해 얻는 교훈이 더 값지다고 생각한다. 이씨 가족은 현지에서 민박집을 구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세르비아에서 차로 2시간 정도 떨어진 시골마을에 가려고 버스를 탔어요. 숙소를 못 구해 걱정하고 있는 찰나,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젊은 부인이 말을 걸어왔죠. 미국으로 시집가 5년 만에 친정을 방문하는 세르비아 여성이었어요. 그녀는 우리에게 ‘산촌 마을에 숙박이 가능한 수도원이 있다’며 ‘비용도 저렴하고 경치도 환상적’이라고 알려줬죠.”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과 인연을 맺어 지금도 계속 이메일로 안부를 주고받는다는 이씨 가족. “여행 중에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운도 좋았지만 가족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잘 해주었기 때문이죠.” 이씨는 리더로서 가족을 이끌고 비행기와 열차 시간표 등을 점검하는 업무를 주로 담당한다. 직업정신을 살려 사진을 찍고 인상 깊은 여행지의 모습을 그림으로 담는 일도 잊지 않는다. 국어교사인 김씨는 여행 중 아이들의 일기를 체크하고 요리 실력을 뽐낸다. 김씨는 “현지 사람이 운영하는 민박집에서 한국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면 외국인들이 매우 좋아한다”며 “문화도 전파하고 친구도 사귈 수 있으니 일석이조 아니냐”며 웃었다. 음악에 죽고 못 사는 재즈마니아 길로는 외국의 음악 문화를 조사하고, 신화를 사랑하는 바로는 신상과 부조, 건축물에 서린 역사와 신화를 가족들에게 설명해준다.

여행 후 사후활동 잊지 마세요
이씨 가족은 여행 후의 사후활동을 철저히 한 덕분에 지난해 여름 책까지 냈다. 디지털 앨범을 제작하고 여행 중에 남긴 기록을 깔끔하게 정리했다는 김씨는 일기쓰기를 강조한다. “여행 중에 일기를 쓰면 그날 본 것과 느낌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어요.” 여행 후 직접 써온 일기를 타이핑하게 하면 여행할 때는 몰랐던 새로운 느낌을 갖게 될 뿐만 아니라 기억도 오래 간다고. 길로와 바로는 힘들고 귀찮았던 일기쓰기가 이제 습관이 됐다. 표현력과 문장력도 일취월장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탐구보고서를 쓰는 것도 빼놓아선 안 된다. 발칸반도의 아기자기하고 질서 있는 간판에 감동을 받은 바로는 한국에 돌아와 우리나라 간판에 대한 문제점을 보고서로 작성, 서울시청에 제출했다. 이 보고서로 바로는 800여 명의 공무원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한 것은 물론 오세훈 시장의 답장까지 받았다. 길로는 현지에서 모아온 대중교통 영수증과 음식을 먹고 받은 영수증을 모아와 이를 바탕으로 물가분석 보고서를 만들었다. 성인의 교통요금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교통요금이 유럽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음식가격은 얼마나 비싼지 등을 분석하면서 길로는 경제박사가 됐다.

잘 계획하고 떠난 여행은 참된 공부
천동초등학교 윤서원(24) 교사는 “21세기형 리더는 가슴에 놀이와 즐거운 추억이 가득 차 타인을 배려하고 다른 문화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라며 “가족여행은 아이들을 정서적으로 성장시키고 다양한 교육적 경험을 하게 한다”고 강조했다. 김씨도 “아이들 모두 자신감이 몰라보게 커졌고 인내심도 많아졌다. 매 학기 학급 임원을 맡을 정도로 리더십도 생겼다”고 흐뭇해 하며 “올해는 신종 플루때문에 해외여행을 떠나기는 어려울 것 같아 국내여행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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