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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스와핑’이 필요한 한국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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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홍콩섬에 란카이퐁이라는 지역이 있다. 카페 수백 개가 모여 있는데 홍콩의 다국적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명소다. 이곳에 조그만 양식당을 운영하는 조시라는 여성은 요즘 매주 목요일 자신의 식당에서 벌어지는 스와핑(swapping)에 푹 빠져 있다. 불륜 이벤트가 아니고 옷 스와핑이다. 자신이 입지 않는 옷을 가져와 교환하는 일종의 환경보호 운동이다. 참가 자격은 없지만 조건은 있다. 옷을 3벌 이상 가져오면 안 되고 가져 온 만큼만 교환이 허용된다. 또 깨끗이 세탁된 상태 좋은 옷이어야 한다. 100홍콩달러(약 1만6500원) 참가비를 받는데 그 일부는 자선단체에 기부한다. 물론 폭발적인 인기다. 행사 때마다 100명 이상이 몰려 자신이 원하는 옷을 찾고 기뻐한다.

그가 스와핑을 시작한 건 지난해 초다. 한 신문기사에서 홍콩 쓰레기 매립지가 5년 후면 바닥이 날 것이라는 기사를 본 게 계기가 됐다. 이후 그는 10살 난 아들에게 환경의 중요성을 가르치기 위해 공부를 했다. 합성 섬유는 썩지 않아 토양오염의 원인이 되고 양모 의류는 썩으면서 메탄가스를 많이 배출해 지구 온난화 주범이라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관련 통계는 더 섬뜩했다. 영국에선 매년 215만t의 의류가 팔리고 9000억 건의 의류가 버려지고 있다. 미국에선 매년 한 사람이 평균 30.8㎏의 옷가지를 내다 버린다. 홍콩에선 시민 72%가 옷을 버린 경험이 있고, 44%는 입지 않는 신상품 의류를 옷장에 넣어두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조시가 매주 목요일만은 모든 일을 제쳐두고 옷 스와핑에 빠지는 이유다. 참가자들의 1차 목적은 자신이 좋아하는 옷 사냥이다. 어쩌다 원하던 옷을 찾으면 괴성을 지르는 손님도 적잖다.

한데 최근에는 참가자들에게 기쁨이 하나 더 생겼다. 옷과 패션에 대해 서로 다른 취향을 가진 이들이 대화를 통해 자신의 패션에 대한 시야를 넓혀 가는 것이다. 조시는 ‘사고(思考)의 스와핑’도 같이 이뤄지는 일석이조(一石二鳥) 행사로 변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홍콩의 유명한 이미지 컨설턴트인 클레어 에드워즈도 조시의 의견에 동감한다. 그는 지난 5월 자신이 개최한 환경보호 옷 스와핑 파티 때 참가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남의 옷에서 흠보다 멋을 찾을 수 있을 때 자신의 패션시야도 넓어진다.” 그래서 그는 참가자 10명의 여성에게 자신의 취향과 다른 옷을 권하고 또 다른 자신의 멋을 발견해 보도록 했다. 모두 눈물을 흘릴 정도로 고마워했다. 환경보호와 불우이웃돕기, 그리고 절약을 위해 시작된 홍콩의 옷 스와핑은 요즘 이렇게 사고의 공유와 또 다른 자신만의 멋을 찾기 위한 사회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시민들의 관심이 폭증하자 최근에는 아예 개인이 효과적으로 옷 스와핑 행사를 여는 비결을 알려주는 인터넷 사이트까지 생겼다. 타협을 모르고 막가는 한국 정치도 따지고 보면 내 옷, 내 패션에만 집착해서가 아닌가 싶다. 해서 국회에 국민을 위한 정책 스와핑 행사를 열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최형규 홍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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