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량은 맥주 한 컵 정도 술보다 풍류가 좋더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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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호 06면

이상희 전 장관이 쓴 『술-한국의 술문화』(사진 위)와 직접 손으로 쓴 원고 원본.

관심 분야를 박람강기(博覽强記)로 파고드는 이상희 전 장관의 면모는 모은 책만 아니라 직접 쓴 책에서도 드러난다. 최근 새로 펴낸 『술-한국의 술문화』(전 2권·도서출판 선·17만원)가 대표적이다. 도합 17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에 우리 술의 종류·기원은 물론이고 옛 문헌에 나오는 주법·주도, 술과 관련된 놀이, 역사 속의 애주가, 문학과 술, 술에 얽힌 야화 등을 집대성했다. 자료수집에 10년, 집필에 3년이나 걸렸다. 200자 원고지로 1만여 장에 달하는 원고 전체를 손으로 썼다. 옛 문헌에 나오는 한자 가운데 요즘 컴퓨터에 등록되지 않은 것이 많아서다.

최근 출간한 『술-한국의 술문화』

항목마다 흥미로운 내용이 풍부하다. 풍류놀이판, 즉 주사위를 굴려 나온 숫자에 따라 말을 옮기는 놀이판도 그 한 예다. 팔도 명승지를 한 바퀴 도는 남승도(覽勝圖)는 승려·미인·어부 등 맡은 역할에 따라 연고가 있는 지점에서 술을 마시는 규칙이 재미있다. 예컨대 승려는 해인사·낙산사 등에서, 미인은 광한루·촉석루 등에서 술을 마시는 식이다. 미인이 먼저 간 곳에는 승려가 갈 수 없는 규칙도 있다. 이런 자료들의 실물사진과 음주·취흥을 그린 옛 그림 등 이번 책에는 시각자료도 1200여 점을 곁들였다.

이처럼 술 문화 탐구에 공을 들였지만, 정작 저자 자신은 애주가와 거리가 멀다. “찾아서 마시는 편이 아니에요. 맥주 한 병 마시면 취하고, 맥주 한 컵이 내 기분에 맞죠. 공직에 있을 때는 억지로라도 마셨지만.” 그의 관심은 술 자체가 아니라 술을 풍류로 즐기던 선비들에서 출발했다. “허영은 아닌데, 돈이 좀 있었더라면 별장을 하나 짓고 싶었죠. 처마도 멋지고 정원도 예쁘게…사랑방에는 바둑판을 가운데 놓고, 그 곁에는 문방사우를 갖춰 놓고…옛 선비들이 즐겼듯 말이죠. 그런데 연적이나 벼루는 하나에도 수천만원까지 호가하니, 내가 (수집)할 일이 아니구나 싶어 일찍 포기했어요. 그러면서 선비들이 무슨 책을 갖고 어떤 공부를 했는지, 방안에서는 또 야외에서는 어떻게 놀았는지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 풍류가 술과 참 밀접한 관계가 있더군요.“

이번 저서는 그런 관심과 호기심을 세세한 부분까지 넓혀간 산물이다. “옛날에는 이 집에 술을 판다는 걸 어떻게 표시했을까, 쓰인 데가 없으면 내가 한번 알아봐야겠다, 이러면서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했지요. 예를 들면, 원형이나 사각의 등 밑에 종이·헝겊을 죽죽 찢어 달아놓으면 이 집은 술도 팔고, 국수도 판다는 표시였어요.”
이상희 전 장관은 앞서도 여러 권의 저서를 펴냈다. 모은 책이 그랬듯, 쓴 책도 평생 공직에서 그가 했던 일과 연관이 깊다. 그 시작은 『지방세 개론』(1979년), 『지방재정론』(82년)이다. 공직생활 초창기 지자체와 당시 내무부에서 세정·재정 분야의 과장·국장을 차례로 거친 경험을 바탕으로 펴냈다. “특이한 분야라서 공부를 하려고 해도 법률조문 말고는 따로 정리해 놓은 책이 없었어요. 그러니 달려들어 정리를 해봐야겠다 싶었죠. 지방재정을 담당하는 직원들 교과서 역할을 하도록 쓴 것이죠.”

공직에서 은퇴한 뒤 펴내 화제를 모았던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1998년)도 취미의 산물만은 아니다. 이 역시 전 3권 1500쪽이 넘는 역작이다. “행정기관에서 제가 주로 있었던 분야가 지방재정과 도시관리입니다.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려면 공원을 만들고 가로수를 정비해야 하는데, 그게 바로 나무·꽃과 관련이 있죠. 60년대 말에 진주 시장을 하면서 진주성 정화작업을 하게 됐어요. 임진왜란 때 6만 명의 군관민이 왜군과 싸운 곳인데, 그 의미를 살릴 나무를 심으면서 행정적 관심이 시작됐습니다.”

여름더위·겨울추위가 심한 대구에서 80년대 초 시장을 역임한 경험 역시 관심을 북돋웠다. “겨울에 덜 춥고, 여름에 좀 시원하게 할 방법이 없는지, 삭막한 도시를 아름답게 할 방법이 뭔지 찾으면서 나무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된 거죠. 산림청장도 하다 보니 나무에 대해 보통 사람보다 조금은 더 알고, 그래서 책까지 쓰게 된 겁니다.”

그의 저서 중에 공직과 거리가 있는 것은 두 권의 인물전기다. 『파신의 눈물』(97년)의 주인공 이진영은 임진왜란 때 일본에 끌려갔다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채 3대째 오카야마 성주 가문의 스승 노릇을 한 인물이다. “일본에는 상당히 알려져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잘 몰랐어요. 내가 합천 이(李)가입니다. 그분도 그래요. 그 인연으로 일본에 있는 묘역을 참배하면서 알게 됐어요.” 책을 내기까지 일본과 한국의 현장을 수차례 답사하고 여러 자료를 두루 참조했다. 이를 원작으로 한 창극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 맞춰 양국에서 공연되기도 했다.

『오늘도 걷는다마는』(2003년)은 ‘나그네 설움’ ‘번지 없는 주막’ 등으로 이름난 대중가수 백년설의 전기다. 그와 같은 경북 성주가 고향이라 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잘못 알려진 내용이 많아 책을 쓰게 됐다”지만 그것만은 아니었을 듯싶다. 지하서가에 모아놓은 책 중에는 우리말·일본어 대중음악 관련 서적도 상당하다. “고상한 서양음악을 잘 모릅니다만, 구한말·일제 시대 우리나라 유행가에 대한 자료가 있으면 꼭 손에 넣으려고 하지요.”

읽은 책을 보면 그 사람이 짐작된다더니, 쓴 책을 봐도 그 사람이 드러난다. 경북 성주에서 합천 이씨로 태어나 평생을 공직자로 살아온,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식과 풍류를 즐겼던 옛 선비들을 좇으며 살아온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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