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 양파 인력시장]주부·젊은남녀도 '막일전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11일 오전4시쯤 국내 최대 양파 집산지인 전남무안군무안읍성동리 버스터미널. 양파.마늘 수확기인 매년 이맘때면 한달가량 '인간시장' 이 열린다.

어둠이 걷히지 않은 꼭두새벽이건만 허름한 차림의 여자 20여명이 군데군데 서성거리고 있다.

12인승 미니버스들이 속속 도착하면서 금방 1백여명으로 불어나고 이어 트럭을 몰고온 남자들이 일을 잘 할 것같은 사람들에게 다가가 흥정을 벌인다.

"양파 줄기를 잘라내 망 (網)에 담는 일이고 3만5천원이오. " "4만원은 줘야죠. " "3만5천원에 할 사람만 12명 트럭에 타시오. "

일손을 구하러 온 이윤재 (李允宰.37.무안군해제면) 씨는 예년엔 사람당 5만~6만원을 줘야 했는데 올해는 IMF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목포.나주 등 도회지의 공사장.음식점 등에서 일하던 사람들까지 몰려들어 인력공급이 20% 이상 늘었기 때문이다.

5~15명 단위로 계속 팔려가는 동안 잇따라 들어오는 시내버스들마다 사람들을 쏟아낸다. 귀걸이와 매니큐어, 깔끔한 옷차림새를 한 막일꾼이 아닌 젊은 남녀도 적지 않다.

밭떼기한 양파를 캘 일손을 사러 온 曺모 (54) 씨는 "남편이 실직해 돈벌러 나온 주부들이 많다.

거의가 힘든 일을 견디지 못해 울거나 중간에 포기하곤 한다" 고 귀띔했다.

인간시장은 오전6시30분쯤 인파가 3백여명에 이르러 성시 (盛市) 를 이룬 뒤 점점 줄더니 오전7시를 넘기면서 안타까운 모습으로 바뀐다.

구인자는 거의 없어지고 구직자가 1백여명이나 남는 바람에 3만5천원도 적다고 버티던 사람들이 3만원을 받기로 하고 울며 겨자먹기로 트럭에 탄다.

30여명은 오전7시40분 파장 (罷場) 까지 끝내 팔리지 않아 교통비만 날리고 집으로 되돌아간다. 이들은 대부분 원래 막노동꾼이 아니었던 새내기들.

申모 (37.목포시상동) 씨는 "한라조선에서 퇴직당해 다섯달을 놀다 큰 맘 먹고 오전5시에 나왔지만 데려가는 사람이 없다" 며 멋쩍어했다.

이날은 새벽 날씨가 흐려 사람들이 일감이 적을 줄 알고 1천5백여명밖에 모이지 않아 상황이 그래도 나은 편이다.

2천명 이상 몰려 품삯이 2만5천원까지 떨어지고 그냥 되돌아가는 사람이 1백~2백여명에 이르는 날도 있다는 게 인간시장 주변 상인들의 설명이다.

무안 = 이해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