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공기업 민영화 후퇴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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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부족한 외화를 벌어들이고 공공부문의 효율성을 불어넣는다는 명분아래 기세좋게 출발한 공기업 민영화가 공기업과 관련부처의 반발에 부닥쳐 후퇴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는 기획예산위원회에 정부개혁을 맡길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다.

공공부문 개혁이 후퇴할 것으로 보이는 이유는 단순히 업무관장을 놓고 기획예산위와 정부 각부처를 대변하는 재정경제부간의 알력 때문이 아니라 정부 전체로 개혁마인드가 식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제 외환보유고도 어느 정도 확보됐고 환율 급등도 없으니 구태여 외국인에게 공기업을 매각할 필요가 없다는 명분을 내세워 국가기간산업보호론.국내농민보호론 같은 케케묵은 이해집단의 반대논리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공기업이 민영화되면 관장업무의 상당부분이 없어지는 정부 각부처 공무원이 기획위의 독주를 반가워할 리 없고 민영화 반대론자를 앞세워 그 업무를 이제 재정경제부가 맡아야 한다는 모양새로 발전하고 있다.

우리는 공기업 민영화라는 사안이 워낙 큰 규모라는 점에서 정부내에서 충분히 의견이 개진되고 토의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따라서 기획위와 재경부간의 관할싸움이 문제의 본질인양 비쳐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민영화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빙자한 공기업 개혁의 발목잡기다.

애당초 공기업을 민영화하겠다고 정부가 정책을 결정한 배경에는 단순히 외자를 유치한다든가 부족한 구조조정자금을 염출한다는 것만은 아니었다.

부가가치기준으로 볼 때 국내총생산의 10%를 차지하는 공기업이 효율성을 추구하지 않으면서 민간기업이나 금융기관에 대한 개혁 요구와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 점은 이미 1기 노사정 (勞使政) 위원회에서도 사회적으로 합의된 사항이다.

기획위의 공기업 민영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와중에 재경부가 이제부터 내가 맡아야 되겠다고 나서는 것은 온당치 않다.

대통령은 미국 전역을 돌며 우리의 개혁의지를 호소하고 다니는데 국내에서는 개혁의 뒷다리를 잡는 것 같은 모양새를 보여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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