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수하르트 밝힌 총선카드 재야등서 코웃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역시 수하르토다운 결정이다. " 자카르타 최대일간지 콤파스지의 나시르 정치부장은 19일 수하르토 대통령의 사태수습책을 듣고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정치 10단인 수하르토가 아니면 도저히 내리기 어려운 교묘한 시간벌기 작전입니다. " 우선 급한 불을 끄고 나중을 도모하려는 것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재야운동가인 모하마디아대 교육학과의 디딘도 박사는 "수하르토의 결정은 결코 수용할 수 없다" 고 강조했다. 그 이유는 이렇다.

새 총선을 실시하려면 먼저 선거법을 고쳐야 한다.현재의 법으로 총선을 실시하는 것이 법률적인 흠이 있다는 얘기는 물론 아니다.

지나치게 비민주적이기 때문에 아무도 이 법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 선거법은 ^대통령이 선거를 조직.후원하고^집권 골카르당과 관제 야당인 통일개발당 (PPP) , 인도네시아 민주당 (PDI) 등 3당만 선거에 참여할 수 있으며^정당에 대한 투표이기 때문에 민의를 제대로 반영할 수가 없고^대통령이 군부대표 75석을 국회의원으로 임명할 수 있게 보장하는 등 독소조항 투성이다. 게다가 정.부통령을 선출하는 국민협의회 (MPR) 는 국회의원 5백명과 군부대표, 사회직능대표 5백명이 비상근직으로 참여한다.

이들 모두 사실상 수하르토가 임명하는 대의원들이다. 말하자면 수하르토 친위조직이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이같은 비판을 수용하듯 수하르토는 현재의 선거법 개정을 약속했다. 그러나 법개정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 경우 언제 법이 만들어질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실정이다.

야당지도자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의 반응도 냉담하다. 그녀는 대변인을 통해 "수하르토의 제안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 이라고 말하고 "더 이상의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수하르토의 즉각 사임외에 대안이 없다" 고 말했다.

메가와티의 정책보좌관인 수바기오 아남 (68) 은 "비록 선거법이 민주적으로 개정되더라도 선거 자체에 부정이 개입될 소지는 얼마든지 있다. 수하르토는 일단 시간을 번 뒤 자신의 친위세력으로 후계자를 삼아 퇴임후를 대비하겠다는 계산" 이라고 말했다.

설사 3개월후에 법률개정과 새 MPR구성이 이뤄져 민주적인 대통령이 선출된다 하더라도 그 사이에 인도네시아는 파산하고 말 것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수하르토정권의 유일한 버팀목인 군도 생각보다 균열이 심하기 때문에 수하르토의 수습책이 쉽게 사태를 진정시킬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게 현지 반응이다.

인도네시아 군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대통령의 사위인 프라보위 전략군사령관조차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올 정도로 군 내부에 상당한 의견충돌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고 전했다.

결국 수하르토의 이번 조치는 현재의 사태수습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반 (反) 수하르토 세력들은 전의를 다지고 있다. 삼성물산 인도네시아 지점장인 김정환 (金正煥.53) 전무는 "사태가 심상치 않다.

내일부터 이틀간 회사문을 닫으라는 권고를 대사관으로부터 받았다. 이렇게 나가다간 대규모의 유혈사태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고 우려했다.

자카르타 = 진세근 특파원

〈skj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