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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교수]역사·경제학 강의 인기 끄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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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지난 8일 오후2시 서울 영등포구오류동 성공회대 종합관 6108호실. 1백명의 학생들이 자리를 빼곡이 메우고 있다. 신영복 (申榮福.57) 교수의 '동양철학' 강의시간. 이날 주제는 '노자 (老子)' . 교과운영상 80명으로 제한돼있는 강의지만 신청자가 몰려 1백명 선착순으로 수강신청을 받았다. 외부인들에게도 인기가 있어 타대학의 학부.대학원생, 현직 교사와 목사, 변호사 등 저명인사, 나아가 대학 교수들도 포함돼있다.

각 대학마다 기초 인문사회과학에 수강생들이 줄고 폐강이 속출하는 마당에 웬 이변인가. 申교수의 강의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의 강의는 왜 재미가 있나. 무엇보다 생명없는 앙상한 이론적 뼈대만 소개하는데 그치기 십상인 인문사회과학 강좌에 申교수는 지식인의 고뇌와 인간적 감동을 함께 담아내기 때문이다.

'노자' 를 반 (反) 문화의 철학이자 진보보다는 '퇴 (退)' , 강자보다는 약자의 철학으로 소개한다. 그가 장기간 감옥에서 깊은 성찰을 갖게 했던 '노자' 의 '道可道非常道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도는 항구불변의 도가 아님)' 로 시작하는 제1장을 강독하면서는 당시 사회경제적 조건에서 고뇌했던 한 지식인이 어떻게 사유했고 그것이 사상사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는 것인가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신세대 학생들도 한자의 어려움에 다소 힘들어하는 것 외에는 전혀 거리감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고도성장과 소비사회를 예로 들어 현재의 문화적 담론을 재평가하고 21세기를 모색하는데까지 나가 지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는데 매료되고 있었다.

申교수는 육사 교관으로 있던 68년 이후 통혁당 사건으로 20년의 옥고를 치른 뒤 88년 가석방돼 이 대학에서 초빙교수로 강의를 하다가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면 복권돼 지난달 22일 장장 30년만에 정식 교수가 돼 교단에 섰다.

동료교수들까지 그의 강의를 청강하는 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학부제가 직접적인 원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전공이기주의에 안주해 위기를 맞고 있는 인문사회과학의 새로운 출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전문화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게으름을 은폐하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총체적이고 깊이있는 이해를 가로막는 현실에서 철학.문학.역사.경제학을 넘나드는 申교수만의 독특한 강의에서 '인간' 의 학문을 모색해볼 수 있다는 기대를 해보는 것이다. 이같은 기대는 한국대학의 서열화 구조를 벗어나 '인권과 평화' 를 특화한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돋움하려는 성공회대의 실험과 맞물려 있다.

구태의연한 강좌들 대신 이번 학기에만도 '법과 인권' '사회복지와 인권' '정보화와 인권' 등 인권과 관련된 강좌를 교양필수로 개설하는 등 활발한 특성화 작업을 벌리고 있다. 이 대학 조희연 기획처장 (사회학) 은 "작은 대학이지만 인권과 평화연구에 관한한 세계적인 대학을 만들고자 하는게 이 대학의 목표" 라고 소개한다.

아무튼 성공회대에서 申교수의 강의를 들어보면 작지만 의욕적인 대학의 독특한 맛을 느낄 수 있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wjsan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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