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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길인생]SBS 음향실 '효과맨' 조병식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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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바람소리라고 해서 모두 같은 바람소리가 아니지. 생각해봐, 삭정이를 스치는 소리와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를 스치는 소리가 어떻게 같을 수 있는지. 풀벌레 우는 소리도 그래. 봄에 우는 소리,가을에 우는 소리가 천양지차야. " SBS 음향실에서 만난 '효과맨' 조병식 (56) 씨는 "바람소리는 어떻게 만드세요" 라는 질문에 '소리' 가 얼마나 많은 감정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열띤 목소리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PD나 작가들이 "그냥 '바람소리' 하나 주세요" 라고 주문할때면 무조건 화부터 난다는 조씨. 서라벌 예술대학을 졸업한후 68년 동아방송에 입사할 당시만해도 연출가가 되기를 꿈꿨지만 '소리' 를 좇아다니기 시작한 후엔 관심밖의 일이 됐다.

'소리' 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진짜 '쟁이' 가 되어야 한다는 그의 '효과맨론 (論)' 에서 창조력은 가장 중요한 요건. "효과맨은 소리를 채집하고 다시 재창조하는 직업이야. '해뜨는 소리, 경칩을 맞은 개구리가 땅위로 올라오는 소리' 등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소리들까지 만들어내려면 상상력이 필요하지. 내가 창조한 소리가 작품의 분위기와 정확히 일치했을 때의 만족은 이루 말로 다못해. " 원하는 새소리를 찾기 위해 며칠 동안이나 텐트 속에서 노숙을 하는 것도, 도둑이나 거지로 몰려 봉변을 당하는 것도 그에게는 흔한 일. 종소리를 찾아 전국을 다녔던 그는 국내 모든 절의 종소리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 멸종한 것으로 보고되는 크낙새 울음소리등 희귀한 소리들은 그가 후배들에게 물려줄 효과맨 30년의 자산. 그는 문득 30년전 효과일을 시작할 때를 떠올린다.

"당시에 파도소리는 키에 쌀을 넣고 이리저리 흔들어서 만들었지. 커다란 양철판을 흔들면 천둥소리와 비슷했어. 그러다가 가운데를 발로 '뻥' 차면 우뢰소리가 되는거고 말이야" .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녹음실 풍경. 그런 억지 음향을 피하기 위해 그는 지난 해부터 자신이 모은 소리들을 체계적으로 정리, SBS 음향실에 비치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동료들은 평생을 들여 모은 소리를 공짜로 내놓아서야 되겠느냐고 걱정하지만 자신의 일이 사회에 환원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74년 '동아투위' 에 참여했다 동아방송에서 쫓겨난 후 17년 동안 MBC에서 프리랜서 신분으로 일하며 큰 돈을 벌어본 적도, 대단한 명예를 얻은 적도 없었지만 일생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생각을 버린 적이 없었다.

SBS에 입사한후에야 정보데이타부 부장이라는 직함을 얻게 됐지만, 여전히 효과맨이라는 말에 익숙한 그는 "다시 태어나도 효과맨이 되고 싶다" 고 한다.

박혜민 기자〈acirf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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