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일관성 잃은 장관제청 논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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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는 28일 주양자 (朱良子) 보건복지부장관의 후임을 조기에 임명할 방침임을 밝혔다.

"법에 의해 총리서리의 제청을 받을 것" 이라는 게 당국자의 발표다. 총리서리지만 제청권 행사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게 정부의 판단같다.

이같은 자세는 지난달과 대비된다. 정부는 3월3일 '김영삼 정부' 의 총리였던 고건씨의 제청으로 새 각료를 임명했다.

그러고는 그날로 高씨를 물러나게 한뒤 김종필씨를 새 총리서리로 임명했다. 정부가 모양새를 구겨가면서까지 이같은 과정을 거친 이유는 분명하다. 총리의 제청권 행사와 관련한 위헌시비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정부의 논리가 두달도 채 안돼 바뀐 것이다.

물론 정부의 사정을 이해한다. 물의가 있는 장관을 그대로 둘 경우 상당한 부담이 된다. 더구나 6.4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이다.

서리문제부터 해결하자니 과반수 의석을 가진 한나라당이 요지부동이다. 그렇다고 장관이 공석인 행정공백 상태를 방치할 수도 없다. 결국 총리서리의 각료제청이라는 고육지책 (苦肉之策) 으로 결론을 내린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사정들과,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 가운데 어느 것이 큰 비중이 있는 것인가. 말할 것도 없이 국민의 믿음이다. 장관 부재 (不在) 도, 지방선거도 여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스스로 논리의 일관성을 버리고 자기모순을 보였다. "우리가 이래도 국민은 이해할 것" 이라고 본다면 오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혹시 담당자들이 바뀌었다면 모를까 지난달 이 문제로 대통령에게 조언했던 참모들이 모두 그 자리 그대로다. 그러면 그때는 주위의 눈치도 보고 적법여부도 신경썼는데 지금은 내키는대로 하겠다는 얘긴가.

정부는 90%에 달하던 과거정부의 지지도가 한자릿수로 떨어진 이유를 돌이켜봐야할 필요가 있다.

"오만과 독선으로 국민의 믿음을 잃었기 때문" 이라는 게 여권의 진단 아닌가. 이제는 정부 스스로가 편의주의적 독선을 경계할 때다.

김교준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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