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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밝으면 천당, 어리석으면 지옥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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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호 14면

흥국사는 한국 불교가 왜색 불교를 몰아내고 선불교(禪佛敎) 중심의 조계종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찰로서 1954년 5월 이승만 대통령의 정화유시의 발단이 된 곳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이는 드물다. 당시 이 대통령은 이 사찰에 들렀다가 아이의 기저귀가 빨랫줄에 걸려 있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아 왜색 불교인 대처승을 몰아내는 정화유시를 발표, 한국 불교 정화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어쩌면, 이곳은 암울한 한국 불교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절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가 깊은 절이라 할 수 있다.

월서 스님의 사찰 속 주련 이야기 <9>-고양 흥국사 시왕전

흥국사 창건의 역사는 깊다. ‘미타전 아미타불 복장 연기문’에 수록된 것을 보면 1300여 년 전 신라 문무왕 원년에 당대 최고의 고승이었던 원효 대사가 북한산 원효암에서 수행을 하다 북서쪽에서 상서로운 기운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내려왔다가 서기를 발하고 있던 석조 약사여래(藥師如來) 부처님을 본 후 인연도량이라 생각하여 본전(本殿)에 약사부처님을 모시고 ‘상서로운 빛이 일어난 곳이라 앞으로 많은 성인이 배출될 것이다’ 하고 절 이름을 흥성암(興聖庵)이라 지었다고 되어 있다. 이후 조선 숙종 때 중창하고 영조 시대에 크게 발전시켰다고 되어 있다.

특히 영조 대왕은 미타전 아미타불을 개금 중수 하였으며 생모 숙빈 최씨의 묘원인 소녕원에 행차했다가 많은 눈을 만나 이를 피해 이곳에 들러 하룻밤을 머문 뒤 아침에 일어나 한편의 시를 적었는데 ‘朝來有心喜 尺雪驗豊徵·아침이 돌아오니 마음이 기쁘구나. 눈이 한 자나 쌓였으니 풍년이 들 징조로다’라는 시구(詩句)를 편액(扁額)으로 만들어 친히 하사하며 약사전을 중창, 왕실의 원찰이 되어 왕실의 안녕과 국태민안을 기원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후 많은 스님이 중창하다가 관선·법헌 스님에 의해 후불탱화와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를 조성하였다.

특히 이 사찰에서 유명한 것은 설법전으로서 정면 7칸, 측면 8칸 규모의 H자형 팔작지붕 건물이다. 이곳은 조선 후기 흥국사가 불화를 조성하는 불모(佛母)들의 근거지인 경산화소(京山畵所)로 불려질 때 이 건물에서 많은 불화를 조성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흥선대원군이 쓴 ‘흥국사(興國寺)’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내부에는 근래까지 만월보전에 봉안했던 팔상탱과 괘불·천수천안관음보살좌상·지장탱·신중탱·범종 등을 봉안하고 있다.

이 밖에 흥국사는 약사기도처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다. 태조 이성계에게는 출가(出家)한 딸이 하나 있었다. 속가의 아버지인 이성계가 병이 나자 약사여래를 바로 이곳에 조성하였다. 이후 흥국사는 신병으로 고통을 앓고 있는 사람이 이 절에서 치성을 올리면 건강을 회복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시왕전 내부에는 중앙의 목조지장삼존을 비롯하여 시왕·판관·귀왕·사자·장군 등의 명부권속을 배치하였다. 이러한 존상 뒤로는 1792년 조성한 지장탱과 역시 같은 해 조성한 시왕탱이 봉안되어 있는데 시왕전의 주련은 지장보살님의 원력을 담고 있다.

‘地藏大聖威身力 恒河沙劫說難盡·지장대성 위신력은/ 항하사 겁을 설하여도 못 다함일세’
원래 지장보살은 도리천궁에서 석가여래의 부촉을 받고 매일 아침 선정에 들어 중생의 근기(根機)를 관찰, 석가세존이 입멸한 뒤부터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몸을 육도(六度)에 나타내어 천상에서 지옥까지 고통에 빠진 일체중생을 다 구원하고 그 모두가 성불한 후에 스스로 성불하겠다고 했던 대자대비(大慈大悲)한 보살이다. 여기에서 ‘항하사’란 갠지스 강의 모래라는 뜻으로, 무한히 많은 것. 또는 그런 수량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것으로 지장보살의 원력은 그 항하의 모래로도 다 헤아릴 수 없는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見聞瞻禮一念間 利益人天無量思·잠시 동안 보고 듣고 절하더라도/ 인간 천상 이익 됨이 한량없도다’.
이러한 지장보살을 중생이 잠시라도 보고 듣고 절하더라도 큰 공덕(功德)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원래 인간의 마음속에 천당과 지옥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이것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으면 그것이 지옥이요, 밝으면 천당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모든 것은 몽환포영(夢幻泡影)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셨던 것이다.

우리는 전직 대통령의 죽음으로 인해 많은 것을 깨달았다. 대통령은 이 세상에서 최고의 권력자다. 그런 그에게도 죽음보다 더한 번민과 고통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인간의 행복은 바로 권력과 물질·명예로 얻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은 없다. 얼마나 괴로웠으면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였던 그가 스스로 목숨을 버렸겠는가.

그가 남긴 마지막 한마디의 말인 ‘죽음과 삶이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라는 말도 새삼 가슴 깊이 큰 깨달음을 주는 것 같다. 이것은 일찍이 부처님께서 춘다의 공양을 받고 병을 얻어 열반을 앞두고 하신 말씀이다. 세상에는 분명히 영광스러운 죽음이 있으며 비굴한 죽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을 두고 어찌 일설(一說)을 감히 할 수 있겠는가? 실로 우리 중생은 그가 가졌던 권력과 명예, 무한한 물질을 가질 수 없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생이란 ‘한갓 꿈이며 환에 지나지 않고 물거품에 지나지 않는 몽환포영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가지고 있지 않은 행복한 미래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그의 죽음에서 우리가 느끼는 최상의 깨달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956년 전남 구례 화엄사에서 사미계를 수지했으며 분황사·조계사·불국사 주지를 역임했다. 대한불교 조계종 대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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