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으로]국제한국학회 '한국문화와 한국인'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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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한 (韓) 민족을 반만년 가까이 지탱해온 저력은 무엇일까. 우리가 우리임을 잃지 않게 해주는 문화적 특질을 하나로 짚어내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생활.문화.사회 속에 묻어있는 문화적 정체성을 여러모로 분석해 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국제한국학회 (회장 최준식.이화여대.종교학) 는 한국문화를 통합학문적 입장에서 연구하기 위해 지난 95년 소장학자 1백50여명이 만든 단체. 그 첫번째 저작으로 '한국문화와 한국인' 을 내놓았다 (사계절刊) .최회장이 "우리 문화를 다양한 학문적 시각에서 분석하는 단초를 마련하겠다" 고 밝힌 대로 각 분야 전문가들의 첫 공동작업이라는데 의미가 있다.

여기엔 사회학.인류학.종교학.가정학.심리학 등을 전공한 8명의 학자가 참여했다. 이 책은 놀이 문화를 비롯한 한국인 특유의 술문화.종교.언어.가족관계.대인관계.여성의 지위 등 7편의 독립된 주제로 나뉘어 있다.

실생활과 사회적 사건, 문학.드라마까지 예로 들며 한국인의 과거와 오늘을 속속들이 보여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학제간 연구로 한국문화를 다루고 있는 것이 이 책의 미덕으로 꼽힌다.

예컨대 문화인류학적 의미에서 한국의 음주문화는 집단 의례로 자리잡았다는 진단을 내리고 사회 심리학적 입장에서 보면 한국인의 관계맺기는 체면.눈치.인사치레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분석한다.

또다른 특징으로는 전통문화 연구에 주로 몰두했던 기존 연구서와 달리 예전의 전통적 요소가 오늘날 한국사회에 어떻게 투영되고 있는가를 소상히 밝히고 있는 점. 가부장제는 일련의 가족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선호사상을 부추기고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존칭을 사용할 때는 실제보다 더 높여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한편 현대에 들면서 전통적 위계질서는 크게 흔들리고 있다. 가족.친척간 호칭도 단순해지고 한국인이 즐기는 대표적 도박인 화투의 방식도 달라졌다.

일례로 해방 이후 화투놀이는 50년대 민화투에서 70년대 이후 고스톱으로 바뀌어 왔다. 민화투는 각 패마다 서열이 확실해 판이 뒤집히는 경우가 없는데 고스톱은 여러 가지 규칙이 보태져 가장 쓸모없던 패인 '피' 가 갑자기 중요하게 취급되기도 한다.

그만큼 급격하게 변화한 한국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해석이다. 이 책은 한국문화에 대해 하나의 정답을 내리지는 않지만 우리의 삶과 인간관계 속에서 이어져 내려온 정체성의 다양한 측면을 조망하게 해준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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