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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환경이 변하고 있다]2.위성방송…언론재벌 머독 진출로 비상(1)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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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한국 사람, 한국 위성, 무궁화 위성!” “세계가 보여요. 데이콤 위성.” 이르면 내년 말께 우리 주변에선 이런 식의 위성방송 광고전쟁이 벌어질지 모른다.

초기 가입자를 확보하기 위한 싸움 말이다.

일찌감치 무궁화 1.2호를 띄워놓고 느긋하게 쳇바퀴를 돌리던 당국과 관계자들은 지난달 발표된 루퍼드 머독의 한국 위성방송사업 진출 소식에 몸이 달아 있다.

세계적인 미디어 그룹 뉴스코프사의 회장인 머독이 데이콤과 합작형식으로 한국시장에 진출하겠다는 의지를 밝혔고, 김대중대통령이 이에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은 우리 나라 위성방송의 청사진을 다시 그려야 할 만큼 큰 변수가 되기 때문이다.

발표 직후부터 머독 진출을 둘러싼 찬반토론과 세미나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해가 엇갈리는 각 집단의 주장과 원론적인 얘기들이 반복되고 있어 쳇바퀴 회전속도만 빨라진 느낌이다.

이 와중에 정작 시청자들은 논의에서 소외되고 있는 실정이다.

시청자 입장에서 볼 때, 위성방송의 시작은 채널이 무척 많아지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랄 수 있다.

케이블 TV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전파가 전선을 타고 오건, 하늘에서 쏟아지건, 궁극에 사람들이 보는 건 브라운관 속의 화면이다.

위성방송은 30~1백 개의 채널을 제공한다.

이를 보기 위해선 '셋톱박스' 라는 수신장치 (가격 50만원 정도) 를 부착해야 하며 매달 별도의 시청료를 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시청자들이 그만한 비용을 지불하면서 위성방송을 보려 할까?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은 “프로그램의 질에 따라 다르다” 는 평범한 얘기가 될 것. 케이블 TV의 실패에 비추어 보면 국내위성방송의 성공도 보장하기 어렵다.

채널이 아무리 많아진들 그것을 채우는 내용이 사람들을 사로잡지 못하면 사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외국 사업자들도 몇년씩 큰 폭의 적자를 감수해야 했다.

머독의 진출이 두려운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머독의 뉴스코프사는 세계 각국에서 미디어.위성방송사업을 벌여오며 수많은 콘텐츠 (소프트웨어.프로그램) 를 확보했다.

미디어의 황제 머독은 미국 영화사 20세기 폭스사를 비롯, 방송.인쇄 매체를 포함한 2백여 개의 기업을 각국에 분산 소유하고 있다.

따라서 50개 정도의 채널을 재미있게 꾸리는 것은 간단한 문제. 요금 징수 등 운영에 대한 노하우도 이미 갖고 있다.

거기에 국내 프로그램 공급업체와 손을 잡고 나면 독보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다.

이에 반해 우리 나라의 방송위성 준비 상황은 암담하다.

통상 운영체계 현장테스트에 소요되는 기간은 1년 정도. "부지런히 통합방송법을 통과시킨다 해도 데이콤이 상용서비스를 개시하겠다고 천명한 내년 9월 이전에 무궁화 위성이 틀잡힌 서비스를 하긴 어렵다" 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일단 한 가지 위성의 셋톱박스를 설치하고 나면 다른 위성 수신장치를 추가로 갖추려는 사람은 없을 전망. 데이콤 위성 셋톱박스가 시장을 확보하면 무궁화 위성은 그냥 허공에 뜰 수도 있다.

그동안 위성방송 진출을 준비해온 대기업들도 데이콤 위성쪽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김대중대통령의 약속에 따라 머독의 진출을 허용한다면 하루 빨리 무궁화 위성 활용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대기업이건 중소기업 컨소시엄이건 속히 사업 주체를 확정해 신속하게 채널을 채울 콘텐츠를 확보하고 대등한 경쟁을 할 채비를 갖춰야 할 것이다.

두 방송위성이 뜨게 되면 셋톱박스의 무료.저가임대 등을 통한 초기시장 확보 전쟁은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 대기업들은 PCS사업의 마케팅을 연구하며 시장 선점을 위한 전략 수립에 들어갔다.

방송내용에 대한 심의 문제, 케이블 TV 업체와의 관계 등에 대한 대책은 방송위성 사업 추진과 병행해 마련해야 하며 통합방송법의 올 상반기 국회 통과는 더 이상 지체되어선 안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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