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사로 미리보는 국민의 정부]총괄·정치…낡은 정치 최우선 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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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대중대통령의 25일 대통령 취임사는 '국민시대 선언문' 으로 요약될 수 있다.

정치.경제.사회.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그는 국민의 입장에서 정책을 추진할 것임을 약속했다.

金대통령 스스로가 국민쪽에 서서 그동안의 잘못을 고쳐나가는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이날 연설문은 역대 어느 대통령의 연설문과 비교해 결코 화려하지 않았다.

미사여구 (美辭麗句) 는 거의 없었다.

핑크빛 청사진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 대신 연설문에는 자성과 촉구, 호소와 당부, 각오와 다짐이 넘쳤다.

그만큼 金대통령이 자신의 의지와 철학을 깊이 심으려 애썼다.

그런 의미에서 이날 金대통령의 취임사는 앞으로 5년동안 두고두고 정국운영 방향을 짚어볼 수 있는 좋은 잣대가 될 것 같다. 편집자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25일 취임사는 평소 그의 지론을 정리한 것이다.

새롭고 충격적인 내용보다 대선 공약에서, 또 당선자로서 그때그때 발언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집권5년의 밑그림인 취임사를 이렇게 나열식으로 꾸민 金대통령은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의 병행' 을 국정의 대원칙으로 제시했다.

경제회생을 명분삼아 민주주의를 희생시키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그는 과거 군사정권과의 차별성을 이 대목에서 찾고 있다.

취임사 구석구석에서 민주주의 발전에 대한 金대통령의 의지를 짚어볼 수 있는데, 따라서 이 원칙은 앞으로 경제문제뿐만 아니라 정치.사회 전반에 걸쳐 적용될 것이 분명하다.

국민은 이 얘기를 金대통령 집권기간중 수시로 듣게 될 것이다.

金대통령은 오늘의 경제위기를 '6.25이후 최대의 국난' 이라고 규정하면서 그 원인을▶정치.경제.금융을 이끌어온 지도자들이 정경유착과 관치금융에 물들었고▶대기업들이 경쟁력없는 기업들을 문어발처럼 거느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경제파탄의 책임도 민주주의가 성숙되지 않은 탓이라는 게 金대통령의 판단이다.

민주주의 원칙이 정치뿐 아니라 경제에도 적용될 것이라는 예고이기도 하다.

金대통령은 또 현 시점을 지식정보사회로 향하는 시기로 규정하면서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손쉽고 값싸게 정보를 얻고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민주사회에서만 가능하다" 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런 민주주의관은 사회분야에선 '바르게 산 사람이 성공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실패하는 사회' 를 반드시 이루겠다는 공정개념으로 나타났다.

金대통령은 이밖에 총체적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최우선 과제로 정치개혁을 내세웠다.

참여민주주의의 실현, 중앙정부의 권한과 기능을 민간과 지방자치단체에 대폭 이양하겠다는 약속 등은 지방자치가 보다 활성화할 것임을 알려주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낡은 정치에 변화가 시도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그는 자신의 '성향' 에 대해 의혹을 풀지 않고 있는 세력들에 대한 호의적인 손짓도 잊지 않았다.

어떤 정치보복도 않겠다거나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똑같이 중시하겠다고 했다.

미국에 대해 한.미 안보체제 강화를 강조함으로써 새 정권의 대미 (對美) 정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미국을 안심시키려 했다.

5년전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민족 우선원칙' 을 밝혔다가 미국과의 관계가 한 때 꼬였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 듯하다.

그러나 취임일을 둘러싼 상황이 국난 (國難) 으로 대표될 만큼 어렵기는 하지만 미래 보다는 당장의 현안에 신경을 써야하는 실정 때문에 21세기를 여는 대통령으로서 그랜드 비전을 분명히 내비치지 않은 것은 다소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김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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