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전봉건 '사랑'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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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그리고

아무리 모진 비바람이 삼킨 어둠이어도

바위 속보다도 어두운 밤이어도

그 어둠 그 밤을 새워서 지키는 일이다

훤한 새벽 햇살이 퍼질 때까지

그 햇살을 뚫고 마침내 새 과목이

샘물 같은 그런 빛 뿌리면서 솟을 때까지

지키는 일이다. 지켜보는 일이다. 사랑한

다는 것

- 전봉건 '사랑' 중

사랑을 이다지도 착실한 근무와도 같은 자아의 확증으로 삼고 있는 그 억제된 감정이 썩 좋기도 하다.

밤새도록 숙직자가 되고 그 어둠 속에서 나오는 새 광명의 증인이 되는 일을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 저 6.25 임시수도 부산 광복동의 한 다방에서 자살한 시인 전봉래 (全鳳來) 의 아우가 전봉건 (全鳳健.1928~1988) 이다.

그도 이제 없다.

그 작은 눈, 작은 입술이 그립다.

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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