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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푸아뉴기니 한인사회 길 닦아놓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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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사업이 망하면 절망에 빠지는 사람이 대부분이죠. 하지만 저는 아니었어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 심지어 잘 알지도 못하는 곳을 찾아 떠났지요. 파푸아뉴기니로요.”

파푸아뉴기니에서 17년을 살다 최근 귀국한 황영구(51·사진)씨의 말이다. 황씨는 1992년 하던 사업이 기울자 남태평양의 섬나라 파푸아뉴기니로 훌쩍 떠났다.

파푸아뉴기니로 간다고 하니 주위 사람들이 “거기 식인종 있다던데” “말라리아 모기 무섭다던데”라는 반응을 보이며 만류했다. 그래도 그는 개의치 않았다. 모르는 곳이었기에 모든 게 새로웠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원시 부족도 있었고, 말라리아 모기도 있었지만 나름 정이 깊게 들었다.

“‘설마 죽기야 하겠어?’라는 마음으로 떠났어요. 두렵기도 했지요. 하지만 두려움은 곧 설렘이며 호기심이에요. 도전의식이 생겼지요. 실제로 가보니 정말로 죽으란 법은 없던데요.”

지금이야 웃으며 이렇게 얘기하지만 쉬운 길은 아니었다. 술집부터 건축업까지 다양한 사업을 벌였다. 현지 주민의 문화를 잘 몰랐던 탓에 싸움에 휘말린 적도 있었다. 현지 주민들이 그를 ‘원톡(wontok·생사를 같이 하는 친밀한 존재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래서 올해 초 한국으로 돌아온 뒤 그동안의 기억을 담아 『시간이 필요 없는 세상, 파푸아뉴기니』(예지)라는 책을 냈다. 파푸아뉴기니 한인사회의 개척자라는 자부심을 담았다.

“파푸아뉴기니엔 900개가 넘는 부족이 있고 언어만 해도 869개에 달한다는 통계가 있어요. 게다가 각각의 부족이 자기들만의 뚜렷한 색채를 갖고 있지요. 이렇게 각기 다른 전통과 문화를 먼저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한 게 열쇠였습니다.”

파푸아뉴기니에서 통용되는 ‘피진 영어(pidgin English·문법과 어휘를 간략화하고 현지화한 영어)’도 열심히 연마했다.

“그렇게 현지인과 현지문화에 자연스레 젖어 들고 나니 파푸아뉴기니가 천국으로 보였어요. 지금 이 순간도 그 나라의 총천연색 자연이 그립습니다.”

자리를 잡고 나서는 한인회를 꾸렸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으로 파푸아뉴기니에 끌려왔던 한국인 위령제 행사에 관여하기도 했다. 그러다 아들과 딸이 각각 한국의 대학으로 진학하면서 한국으로 올 일이 잦아졌고, 어머니의 임종을 맞으면서 귀국을 결심하게 됐다.

서울로 돌아와서도 그의 마음 속엔 파푸아뉴기니의 기억이 가득하다. 그 기억으로 책을 썼고, 남태평양에 관련된 카페와 박물관을 열 계획도 세우고 있다.

“제가 떠나고 돌아오는 동안 파푸아뉴기니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은 정작 많이 바뀌지 않았더군요. 제가 경험한 그곳 사람들과 아름다운 자연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개척해볼 생각입니다.”

글=전수진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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