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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 환자] “아이고! 죽네” 하시더니 이젠 허허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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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근 비뇨기과원장은 “전립선비대증 환자는 자극적 음식물을 피하고, 오랜 시간 자동차 여행도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조영회 기자

3년 전 일이다. 팔순을 넘긴듯한 할아버지가 몹시 불편한 얼굴로 진료실로 들어섰다. 지난 밤부터 소변을 전혀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평소 술을 즐겨 마시는데, 조금만 과음하면 같은 일이 반복돼 응급실을 찾아야만 한다고 했다. 혈압이나 당뇨 등 성인병 없이 혈기왕성한 이 할아버지는 전립선 비대증을 앓고 있어 약을 복용 중이었다.

잠자다 소변 때문에 자주 일어나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소변이 걱정돼 장거리 여행도 못간다고 했다. 초음파 검사를 해보니 전립선이 정상인보다 3배 이상 커져 그 동안 얼마나 고생했는지 짐작할만 했다.

“영감님 레이저 수술을 받으시는 게 좋겠어요.” 수술을 권하자 너무 겁난다고 손사래를 쳤다. “엉덩이 주사 맞아봤죠? 처음에 마취할 때 그 정도만 아프고 이후에는 아무 감각이 없어요. 수술도 30분 정도면 끝나고 내시경으로 하기 때문에 상처도 없다”고 설명해도 막무가내였다.

할 수 없이 약을 처방했으나 이후에도 관을 넣어 소변을 배출시키는 시술을 수 차례나 받아야만 했다. 그제서야 도저히 안 되겠다 싶던지 수술을 받겠다고 했다. 수술 D-day, 할아버지 얼굴이 많이 초췌해 보였다. “걱정돼서 지난 며칠간 잠을 제대로 못잤다”고 했다. 수술방에 들어간 지 5 분 정도 지났을까. “아이고 죽네”하고 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들어가 보니 마취준비 하느라 소독약을 바르는데 아프다고 큰소리를 지른 것이다.

어렵게 마취 후 막상 수술할 때는 전혀 반응도 없고 편안히 잠만 자다가 끝날 때쯤 “잘 되었냐”고 졸린 목소리로 물어봤다. “네, 영감님 수술 잘 됐으니 걱정 말고 편히 주무세요.” 다음날 소변줄을 제거하니 젊었을 때처럼 힘차게 배뇨했다. 3주간의 약물요법 후 “이제 안 오셔도 됩니다”하고 했는데, 할아버지가 6개월 가량 지나 다시 진료실을 찾 았다. “소변 안나오세요?” 했더니 빙그레 웃으시며 “박사님 덕분에 요즘 살맛이 나네, 여행도 맘대로 다니고 술도 맘대로 먹고 그래, 진작에 수술받을 걸 그랬어”라고 하며 집에서 수확한 거라며 포도 상자를 내려 놓았다.

전립선은 밤알 크기 정도로 방광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남성에게만 있다. 정자에 대한 영양공급과 위험물질로부터 정자를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 아이를 갖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장기 중하나다. 중년 이후에는 필요 없이 커지게 돼 요도를 압박함으로서 여러 가지 불편한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초기에는 소변을 자주 보게 되는 빈뇨 증상이 나타나며, 배뇨를 시작할 때 금방 나오지 않고 지연되거나 오줌 줄기가 약해지고 가늘어진다. 배뇨 시간이 길어지고 얼마되지 않았는데도 다시 요의를 느끼게 된다. 더 진행되면 초기 증상이 더욱 심해지고 과로·음주·성교 등으로 전립선의 충혈이나 부종을 일으켜 갑자기 소변이 나오지 않아 응급실에 방문하여 치료받기도 한다.

전립선 비대증이 의심되면 초음파 검사, 피검사 등을 통해 전립선의 크기를 측정하고 배뇨 상태를 확인하며 전립선암과 감별을 하게 된다. 전립선비대증 환자는 과한 음주나 성생활 등을 삼가하고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는 게 좋다. 따뜻한 물로 온욕을 하면 말초 순환 개선에 도움을 주며, 장시간에 걸친 자동차 여행 등은 전립선의 충혈이나 부종을 초래하므로 피해야 한다.

전립선 비대증의 치료방법은 크게 약물요법과 수술요법이 있다. 최근 간편하면서 안전한 KTP 레이저 시술법이 도입됐다. 레이저 시술법은 순식간에 비대된 전립선 조직을 기화시켜서 제거함으로 고통이나 후유증 없이 30분 전후로 끝난다. 입원이나 전신 마취가 필요 없어 마취가 어려운 고령 환자에게도 안전한 시술이 가능하다.

글=서경근 비뇨기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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