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 총재·한국노총 대화요지…勞·政 이해 다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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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차기 정부의 재벌정책을 주도해온 박태준 자민련총재가 3일 한국노총을 찾았다.

하루전 한국노총측이 노사정 회의의 자리를 박차고 나온 뒤끝이다.

朴총재는 노동계가 재벌의 개혁의지를 불신한다는 얘기를 듣고 강도높은 개혁이 진행되고 있음을 설명해주기 위해 직접 나선 것이다.

적잖은 긴장이 감돌았다.

박인상 (朴仁相) 노총위원장을 비롯한 10여명의 산별노조위원장 발언은 독설에 가까웠다.

그러나 1시간 가량 대화가 오가면서 서로 이해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한다.

모임이 끝나자 큰 박수가 터지기도 했다.

朴총재가 특유의 직선적 어법으로 말문을 열었다.

다음은 대화요지.

▶朴총재 = 이 자리에서 처음 얘기하는데, 박태준이라는 이름이 국민에게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전체를 걸고 재벌개혁을 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 기업이 그렇게 안하면 침몰한다.

나는 나라의 경제를 세웠던 개발세력의 한사람이다. 내 나이 70인데 뭘 더 바라겠나. 내가 있는 한 믿어달라. 6.25 이후 한번도 쉬어보지 못했다.

나도 여러분처럼 머리가 검었었는데 (포항제철) 용광로에 다 태워 이렇게 됐다.

▶산별위원장 (1) =우리가 노사정의 들러리인가.

해고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우리가 투쟁하면 모이게 돼있다.

무기없는 노동자에게 탱크를 들이미는 것 같다.

▶朴총재 = 지금은 국난이다.

1차 책임은 정부고, 2차 책임은 기업이다.

노동자도 오늘의 사태에 조금은 책임이 있다.

외환위기 때문에 외국과 전화를 1백통도 넘게 했다.

지난달 24일엔 목에서 피가 나고 설사를 여덟번이나 했다.

▶산별위원장 (2) = (정리해고 문제를) 정권인수 후에 논의했으면 좋겠다.

▶朴총재 = 일리있는 말이나 경제는 시기를 놓치면 다 죽는다.

지난 뉴욕협상에서 2백40억달러 단기외채를 1~3년으로 상환연기했는데 그렇지 않았으면 오는 3월에 모두 망할 것이다.

우리도 정권인수 후에 나서고 싶지만 나라가 부도나고 나서 노동문제 얘기를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산별위원장 (3) =정리해고라는 살생부에 노조위원장이 어떻게 사인을 하겠는가.

그러나 나라를 위해서라면 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있다.

총재 말씀대로 일방적인 정치행위로 문제를 해결해선 안된다.

국회내에 부당노동행위를 처리하는 특별검사제 도입을 제안한다.

▶박인상 노총위원장 = 정치개혁과 재벌개혁에서 가시적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노동계만 희생될 수 없다.

노총도 현재의 긴박한 상황은 이해한다.

기업의 부당노동행위를 먼저 치고 (처리하고) 나가는 모습을 보여달라.

▶朴총재 = 국회 노동위에서 부당노동을 감시하는 기구를 마련토록 하겠다.

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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