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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금리·기업 자금경색]기업 살아남기 白兵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고비만은 어떻게 해서든 넘겨보자.” 기업들이 금리.금액.기간을 묻지않고 돈을 빌리는 이른바 3불문 (不問) 식 돈 꾸기에 나선지는 이미 오래다.

이와 함께 부도방지를 위해▶자사주.출자지분.알짜부동산 등 현금화가 가능한 갖가지 자산을 팔아치우고▶외상값.상여금 지급 등 내줄 돈은 최대한 미루고 있다.

그러나 외환위기가 불러온 '자금난의 골' 은 너무 깊어 기업들이 이러한 '살아남기' 노력으로 연쇄부도의 파고 (波高) 를 과연 넘어설지는 누구도 자신 못하는 분위기가 여전하다.

우선 기업들이 '자금난.고금리' 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해온 방법은 자기회사 주식이나 출자지분의 매각. 상장사들이 지난해 팔아치운 자사주는 모두 5백15만주 (5백42억원어치) 로 96년 같은 기간보다 2백16%나 증가했다. 또 계열사간 자금대여도 지난해 12월 한달간 총 47건 1천1백92억원으로 11월 (5건 67억원) 보다 20배 (금액기준) 나 늘어났다.

현금차관을 통해 자금난을 해소하려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과일 가공업체인 시아스코리아와 특수컨테이너를 제작하는 동국엔지니어링은 지난해 말 아일랜드와 홍콩의 현지 금융기관으로부터 각각 4백만달러, 1백만달러를 빌렸다.

그동안 쌓은 신용으로 버티는 회사들도 있어 삼양그룹의 경우 요즘 수출금융이 위축되자 무역업자 (미쓰이.미쓰비시)가 삼양을 믿고 수출품에 대해 신용을 공여해줘 신용장을 개설하는 방식인 시퍼스 유전스 (Shipper' s usance) 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마른 수건 쥐어짜기 식의 비용절감도 한층 강화되고 있다.

삼성물산은 서울서초동 대호빌딩 3~14층을 사용했으나 최근 임대료를 한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3~5층을 완전히 비우고 6~14층까지만 쓰기로 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자금난이 심화되자 비행기를 팔아 매각대금으로 급한 불을 끈 뒤 팔았던 비행기를 다시 리스로 빌려 노선운항에 나서고 있다.

'받을 것은 빨리 받고, 쓸 것은 줄이고, 줄 것은 미뤄라' 는 최근 기업들 사이에 등장한 새로운 화두다.

H그룹 자금팀장은 “부도나면 은행도 피해를 본다며 협박 (?) 해 융자를 받아내는 기업들도 있다” 며 “지금으로선 3월까지 살아남는 것이 최대 관건이어서 그저 한푼이라도 아낀다” 고 말했다.

홍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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