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성취감이 독선으로 이어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386이란 용어도 세력도 아이디어도 몰락했다.”

1996년 이래 한동안 ‘386(30대로 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자)’은 ‘새 피’와 동의어였다. 과거 정치와의 단절을 의미했다. 노무현 정부 때는 집권 세력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과 함께 몰락했다”(중앙대 장훈 교수·정치학)는 평가가 나온다. 사실 정치 세력의 기본 자산은 도덕성과 역량이다.

‘386 정치’는 두 가지 모두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정치·정책 역량에 대해선 대선과 총선에서 이미 국민적 심판이 내려졌다. 도덕성 문제는 최근 박연차·강금원 사건을 통해 밑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무능할 뿐만 아니라 부패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는 ‘처참한 성적표’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전문가들은 “386 정치인들이 민주화 패러다임에 갇혀 있었다”(연세대 김호기 교수·사회학)고 진단한다. 386 정치인들은 민주화운동의 막내이자 대중적 승리를 이룬 첫 세대다. 이런 성취감이 자신감을 넘어 우월감과 독선으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윤여준 전 의원은 한 발 더 나아가 “민주화운동에 공헌한 걸 훈장처럼 달고 교만해졌다”고 지적했다.

이런 의식이 ‘나는 선, 상대방은 악’이란 이분법적 사고로 굳어졌다고 봤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잘못엔 둔감했다. 심지어 부패 문제에도 그랬다. 스스로를 386으로 지칭한 한 학자는 “어려운 여건에서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것 때문에 돈을 지원받는 것에 무심한 측면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명지대 김형준(정치학) 교수는 “이들 사이에선 선을 위해 행동한 만큼 다소 잘못된 게 있어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정치적 편의주의가 작동했다”고 분석했다. 노 전 대통령이 “불법 대선 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었으면 재신임을 받겠다”고 한 게 그 예였다. 경희대 김민전(정치학) 교수는 “위선적이었다”고 비판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피아(彼我)를 구별했고 상대방을 포용하기보단 배제해 불필요한 갈등을 양산했다는 비판도 있다. 386 정치인들이 결국 도태된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장훈 교수는 “386은 80년대 논리를 가지고 90년대 중반 정치권에 입문했다”며 “이후 세계는 급변했는데 내부에선 어떤 비전의 진화도, 비전의 진화를 주도할 만한 인물도 보이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그들의 정치는 재기할 수 있을까. 윤 전 의원은 “지금의 정치권 386을 봐선 희망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변화시키지 못하면 386은 기능 정지”(장훈 교수)란 분석도 있다. 386 정치인들과 비정치적인 386을 구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호기 교수는 “비정치적 386은 이들과 다르다”며 “30대 후반에서 40대 대부분이 386인데 사회의 허리 세대인 이들 중 전문성과 도덕성을 갖춘 그룹에는 더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고정애·백일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