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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쇼크 문화계 파장]공연…해외초청공연 취소사태 내년 기획 엄두도 못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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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문화발전에 꼭 필요한 인프라사업등은 계속 지원할 예정입니다.

그러나 일과성 이벤트 사업은 지원이 어려워지겠지요.' 자체 사업 외에 연간 20억원 규모로 국내 문화사업을 지원해온 삼성문화재단의 한용외 (韓龍外) 부사장은 IMF구제금융시대에서의 변화를 우선 이렇게 말하고 있다.

IMF시대의 경제 한파가 몰아치면서 '문화 주름살' 의 골도 깊어질 전망. 어느 분야보다도 예민한 체감 속에 내핍과 긴축이 예상되고 있다.

문화계 각 부문에 다가올 주름살의 정도와 살아남기 전략을 알아본다.

곧 송년음악회 시즌을 맞는 음악쪽은 벌써 주름살의 여파가 나타나고 있다.

외화지출 규모가 큰 외국 오케스트라 내한공연의 경우 지난해 16건에서 올해 6건으로 줄은 것. 의류업체가 연말 고객 사은행사로 해오던 외국 오케스트라 초청공연을 대부분 취소했기 때문이다.

불황기에 타격이 큰 쪽은 팝시장보다 클래식시장. 한국무지카 송희영 대표는 "신규기획을 하지 않는 것이 오래 살아남는 길이라는 인식이 공연계에 팽배하다" 고 걱정하고 있다.

원화의 약세가 시작되면서 벌써 음악계에서는 방향전환을 시도한 곳도 있다.

해외 연주자 초청공연사업을 펼쳐온 예술의전당과 크레디아 (대표 정재옥)가 이미 국내쪽으로 눈을 돌렸다.

크레디아는 소프라노 박정원.박미혜, 테너 신동호, 피아니스트 이경미등 국내 정상급 연주자들과 전속계약을 맺고 본격적인 아티스트 매니지먼트로 사업방향의 다각화를 시도하고 있다.

음악계의 가장 큰 걱정은 당분간 외국의 정상급 음악단체를 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것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외국기업의 협찬문제를 조심스럽게 꺼내고 있다.

그간 국민정서상 꺼려왔으나 긍정적인 방향으로 신중히 검토해봐야 한다는 목소리다.

이번 기회에 허약한 국내 공연기획업체의 체질을 강화하고 음악계의 저변을 확대해 회원제 강화, 후원회 활성화로 불황을 극복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규모가 작은 무용계라고 해서 IMF시대와 무관할 수 없는 것. 우선 내년에 예정된 큰 공연들, 예컨대 볼쇼이 발레단과 상트 페테르부르크 발레단, 상트 페테르부르크 아이스 발레단등 외국 유명단체 공연은 아마 내년에는 큰폭으로 줄 것이라는 비관적인 예측도 있다.

또 국내 단체들의 해외공연이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매년 수차례의 해외 공연을 가져온 김복희 현대무용단의 김복희 대표는 "공연 스폰서를 해줄 기업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며 "외국 초청 주최측과 협의가 돼도 스폰서 문제 때문에 실제 해외공연을 떠나기 어렵게 될 가능성이 있다" 고 말했다.

무용계에서 걱정하는 긴축시대의 또다른 변화는 내용이다.

일부의 무용 매니어를 위한 정상급의 공연보다는 많은 관객을 모을 수 있는 가볍고 대중적인 공연이 주류를 이룰 것으로 지적한다.

연극도 닥쳐올 불황을 겁내고 있다.

진작 계획이 섰어야 할 내년 봄 시즌 작품들이 당초 계획을 수정, 규모를 축소하거나 아예 공연을 포기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기 때문. 뮤지컬도 예외는 아니어서 대작뮤지컬 제작의 바로미터가 되어온 삼성영상사업단의 경우, 1년 이상 준비한 '눈물의 여왕' (98년 3월 개막 예정) 만 제외하곤 아직 내년 연중 계획도 수립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구나 외국작품 수입공연은 꿈도 꾸지 못하게 됐다.

그러나 타 분야에 비해 외부 충격파는 덜할 것으로 보는 게 연극계의 전체적인 시각이다.

아이러니컬하게 연극계가 오랫동안 침체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간 사실상 거의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자생력을 키워온 것. 그런 점에서 연극계에서는 불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연극협회 정진수 이사장은 "꼭 공연돼야 할, 완성도 높은 작품들만이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누릴 것" 이라고 전망했다.

이장직·정재왈·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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