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고충처리인 리포트

“자영업자가 흘린 눈물, 신문이 닦아주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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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일러스트=강일구 ilgoo@joongang.co.kr

이달 2일 오후 늦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자영업자 김종완(49)씨였다. 서울 동대문구 숭인동에서 추어탕집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사연은 이랬다. 1일 김씨의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던 손님들이 갑자기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다음날 방영될 모 방송 프로그램 예고에서 추어탕집들이 다른 생선을 섞어 판다는 내용이 자막으로 떴기 때문이다. 일부 손님은 식사를 하다 말고 자리를 떴다. 이튿날도 문을 열었지만 파리만 날렸다. 다급해진 김씨는 방송사에 전화를 걸어 “먹고살기 힘든 상황에서 일부의 문제를 전체로 오해할 수 있는 이런 방송은 자칫 정직한 업자에게까지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니 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하소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일 방영된 프로그램에선 재료비 절감을 위해 여러 생선을 섞어 팔고 중국산 미꾸라지를 쓰는 일부 전문 음식점을 고발했다.

방송이 나가자 방송사 홈페이지 시청자 게시판엔 “늘 정직하게 바른 음식을 제공하는 음식점들에 이런 (일방적인) 방송이 얼마나 억울한 해가 되는지 아느냐”는 자영업자들의 항의 글이 쏟아졌다. 김씨도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추어탕을 잡탕으로 속여 판 적은 없다. 경기 불황으로 가뜩이나 장사가 안 되는 자영업자들을 싸잡아 이렇게 힘들게 할 수 있느냐”며 “중앙일보는 자영업자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공정한 기사를 써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부라도 잘못된 사례가 있으면 이를 밝혀서 보도하는 것은 저널리즘의 당연한 기능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다. 방송사 PD들이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PD저널리즘은 속보에 매달리는 기자들의 보도와 달리 심층성을 바탕으로 구체적이고 논리적으로 주제에 접근하는 방식으로 숨겨진 진실을 캐낸다는 순기능이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 주류와 비주류라는 대립적 담론 구조 속에 사회적 약자와 비주류의 관점·시각에 깊은 관심을 기울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대립적 구조는 자칫 보도로 인한 억울한 피해자를 낳을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일반화의 오류’가 날 수 있다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다. 몇 가지 사실만을 가지고 모두 그렇다는 식으로 보는 것을 의미한다. 일부 프로그램의 경우 익명을 과다하게 사용하거나 반론 제기를 소홀히 해 간혹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 신문 기사는 여러 단계의 팩트(사실) 확인 작업(이를 전문 용어로 ‘게이트 키핑’이라고 한다)을 거쳐 순도 높은 정보를 생산한다.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가급적 실명을 사용하고 충분한 반론 기회를 주어 객관성과 공정성을 유지한다. 기사에 신뢰성을 부여하는 방법이다.

사실 본인도 일부 빗나간 PD저널리즘의 피해자로 볼 수 있다. 지난해 4월 MBC의 ‘PD수첩’이 광우병에 관한 보도를 한 이후 한 달여 동안 온 나라가 열병을 앓았다. 당시 고충처리인실엔 하루 20~30통씩 항의와 불만 전화가 쏟아졌다. 광우병 위험은 과장된 것이니 걱정 말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다짜고짜 욕설부터 퍼붓고 심지어 협박까지 해 댈 때는 무섭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정체불명의 거대한 벽 앞에서 상식이니 이성이니 하는 말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광우병 사태가 일어난 지 꼭 1년이 지났다. 실체적 진실을 둘러싸고 있던 장막은 하나둘씩 걷혔다. 기세등등하던 촛불시위대는 산산조각 흩어졌고 PD수첩의 주역들은 법의 심판대에 올랐다. 이제 광우병의 위험성에 대해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PD수첩은 무슨 생각에서 선동이나 다름없는 보도로 국민을 혼란에 빠지게 했을까 하는 의문은 남아 있다. 단순한 오역일까, 아니면 어떤 정치적 목적을 위해 과욕을 부린 것일까.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검찰 수사의 결말이 어떻게 날지 주목된다.

3일 미국 뉴저지주에 산다는 교포 한 분이 국제전화를 걸어왔다. 이 날짜 2면 서울대 박효종 교수가 한 세미나에서 기조 발제한 내용을 정리한 ‘한국 좌파, 진짜 진보적인가’ 제목의 기사에 대한 의견이었다. “신문이나 방송도 이념적인 주제보다는 균형적이고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보도를 해 줬으면 합니다.”

서명수 고충처리인, 일러스트=강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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