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뼈깎는 노력으로 국치국복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레임덕에 빠진 대통령과 대선게임에 휘둘린 정치권, 그리고 투명하지 못한 정부관료가 총체적인 지도력 공백을 가져와 드디어 경제가 일시 혼수상태에 빠졌다.

스스로는 호흡하지 못해 국제통화기금 (IMF) 이란 산소호흡기를 달게 된 것이다.

IMF측과 협상하면서도 결코 IMF에 안 가겠다고 연막을 피우는 한국정부의 불투명한 태도는 이제 외국 투자자에겐 상식이 됐다.

그래서 국내외 투자자들이 차제에 IMF가 돈을 대주면서 한국정부에 대해 부실금융기관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하며 투명한' 구조조정계획을 들이밀 것을 바라고 있다.

이제 IMF 구제금융 요청은 사실상 확정됐고 따라서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관심을 가져야 할 차례다.

이같이 어려운 때일수록 서로가 책임을 미루거나 비난하는 일보다 당장 급한 일부터 하나씩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정부는 지원조건을 최대한 유리하게 끌어내기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대략 5백억달러로 예정된 신청액 중에는 IMF 자체 자금과 미국.일본계 금융기관이 섞여 있을 것이다.

따라서 금리나 상환조건이 협상하기에 따라 많이 달라질 것이므로 최선을 다하기를 기대한다.

두번째는 IMF측이 자금공여와 함께 자동적으로 갖고 들어올 긴축의 내용과 구조조정의 방향을 기왕에 우리가 해오던 것과 일치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도 그동안 지속적으로 구조조정을 시도해 왔지만 지도력 부재 (不在) 로 실천에 옮기지 못한 것을 이번에 과감하고 신속히 처리해야 한다.

세번째는 대통령과 정부가 국민에게 사태가 이 지경이 된 것에 대해 깊은 책임감을 갖고 진솔하게 사과하고 진상을 설명한 뒤 문제해결을 위해 동참해줄 것을 호소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긴급한 외화자금 부족으로 인한 환율의 급등세를 안정시키는 일이다.

이미 환율변동폭의 확대와 IMF 구제금융의 효과로 환율급등세가 차츰 안정을 찾아가고 주가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이같이 단기적으로 유동성이 부족한 상황에서 외화유입을 위해 금리를 올리거나 채권시장 개방을 너무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 환율급등 및 국내외에서 늘어난 통화증가 때문에 물가불안이 예상되므로 정부지출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

IMF가 태국이나 인도네시아에 요구한 긴축정책을 보면 우리에게 성장률의 하향조정 및 국제수지적자 축소, 적정 외환보유고 유지 등을 목표로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이 경우 늘어날 실업 등 고용불안정에도 대비해야 한다.

이같은 거시정책의 운용은 부실기업 및 금융기관 정리와 동시에 수행돼야 효과가 있다.

만약 한보에서 기아에 이르기까지 연쇄적으로 터진 기업의 부실을 원칙을 갖고 신속히 정리했다면 그 불똥이 금융기관으로 튀어 부실화되지도 않았을 것이고 오히려 우리 경제체질을 강화시켰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크다.

또 과다차입에 의한 기업의 무모한 투자가 문제의 근원이므로 은행이 심사기능을 강화하도록 경영주체를 확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IMF의 자금지원이 확정되는대로 정부는 이미 발표한 스케줄대로 빨리 부실 종금사를 정리하고 은행의 부실채권을 정리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이를 위해 10조원으로 늘리겠다는 성업공사의 부실채권 정리기금을 통해 가시적으로 구조조정을 해 대내외에 알려야 한다.

이와 동시에 한보부터 시장가격에 매각하고 다른 부실기업도 자구능력이 없으면 인수.합병을 유도하거나 파산절차를 밟아 금융기관으로 부실이 번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