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정부 환율 불끄기 은행·기업 윽박질러 해결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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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환율이 끝을 모르는듯이 계속 치솟자 정부당국은 강력한 억제조치를 거듭하고 있다.

달러를 사들이는 금융기관이나 기업들에게 노골적으로 압박을 가하는 일도 불사한다.

그러나 이같은 정부당국의 환율정책을 지켜 보고 있노라면 마치 60년대의 여관방 임검하는 방범대원을 연상케 한다.

방문을 일일이 열어보며 주민등록증 소지 여부를 챙기는 모습 말이다.

전화를 걸어 윽박지른다고 환율이 안정된다면 무엇이 걱정일까. 정작 환율불안의 근본적인 처방을 강구할 생각은 않고 이처럼 60년대식의 미봉책 (彌縫策) 으로 일관하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

한 미국 증권사 서울 지점장은 이렇게 말한다.

"한국 기업들은 거짓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경제정책에 투명성이 없고 정부는 문제 해결능력도 없는듯하다.

게다가 외국 투자가들에게는 아주 불친절하다.

이런 마당에 한국경제의 앞날에 대한 확신마저 서지 않으니 떠날수밖에 없지 않은가. " 요컨대 외국 투자자들을 붙들어 매기위해서는 한국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주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무시하고 정치적인 논리싸움으로 환율 문제를 건드리면 더 큰 불안을 초래할 게 뻔하다.

그러나 정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듯싶다.

정부는 급한 불을 끄기위해 연일 시중에 달러화를 풀고, 기업에 전화를 걸어 "달러화를 팔아라" 고 소리치고 있으나 당일에만 '반짝효과' 를 거두는데 그치고 있다.

외국 투자자들은 "통제경제가 통할 줄 아느냐" 며 비아냥거리고 있다.

저항력이 떨어져 작은 외풍에도 심한 열병을 앓고 있는 모습이 우리 외환시장의 현 주소다.

이대로 가다간 외환보유고가 바닥나 한국기업들이 통째로 법정관리를 신청해야될지도 모르는 위기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금융불안은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증가 및 이에 따른 대외신인도 하락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현재의 외환위기를 수습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많은 외환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일이 꼬일수록 미봉책을 버리고 원론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하루하루의 환율 움직임에 매달릴게 아니라, 차라리 환율변동폭을 넓혀서 시장에 맡기는편이 지금의 혼란을 더 빨리 수습할 수있다는 지적들이 많다.

인위적으로 막는 과정에서 증폭되는 불신감이 오히려 환율불안을 더욱 장기화시킬수 있기 때문이다.

박의준 <경제1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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