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무작정 여행’은 5년 전쯤 시작한 새로운 여행 방식이다. 그때 갑자기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부담스럽고 싫증 났었다. 그 싫어진 여러 이유 중 하나가 ‘나도 남들처럼 편하게 여행 한번 해봤음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내가 혼자 멀리 갈 수 있는 곳은 전남 영암에 있는 외할머니댁뿐이었다. 그리고 내 여행 방식에 대한 회의까지 들었다. 왜 나는 늘 목적지를 정하고, 늘 다니던 사람들하고만 갈까.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간다면, 과연 나는 어디로 가게 될까. 그래서 무작정 떠나기로 했다. 누구랑? 그것도 미리 정하지 않았다. 일단 떠나기로 마음먹은 날 나는 전화를 기다렸다. 그리고 전화해 온 사람마다 “오늘 할 거 없음 세상 구경이나 하러 갈래?” 했다. 대부분은 ‘NO’라고 했다. 그러다 한 명이 ‘YES’라고 대답했다. 그 사람과 함께 떠났고 이 방법은 지금도 유효하다.
이런 목적지도 목표도 없는 여행의 묘미는 ‘미지의 세상에 대한 떨림’과 ‘낯선 풍경을 구경하는 재미’에서 온다. 차창 밖의 경치도 그렇고, 기차 안의 풍경도 그렇다. 부부싸움을 하는 좌석, 대낮에 약주 드시고 김 영감님한테 회비 안 냈다고 따지시는 박 영감님, 남의 좌석에 앉았다며 따지시는 아줌마…. 달리는 기차 안에서 얘기하고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살아 움직이고, 말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신기했다.
그냥 내리고 싶어서 내린 곳은 포항이었다. 버스를 타고 바닷가 근처까지 들어갔다. 한적했다. 옷차림은 험했고, 얼굴엔 중국 촬영 갔다가 다친 상처로 반창고를 잔뜩 붙인 채였다. 내 동행은 나를 창피해했지만 나는 그 상황이 시트콤처럼 재미있었다. 백사장에 내 이름을 새겨보고, 좋아하는 이의 이름을 외쳐보기도 했다. 너무 평화로웠다. 숨쉬는 게 느껴졌다. 우린 길가에 버려진 막대기 하나를 주워 들고 동네 골목대장 놀이 하듯 신나고 유치하게 뛰어놀았다.
돌아오는 기차역 안의 수퍼마켓에서 어느 부자를 보았다. 술도 채 안 깬 아버지는 누구한테 맞았는지 손에 붕대를 감고, 얼굴은 상처투성이였다. 그는 아들에게 먹고 싶은 것 다 고르라며 5000원을 꺼냈다. 아들은 과자 하나를 고르더니 더 사라는 아버지의 성화에도 아랑곳 않고 “그걸로 아빠 소주 사먹어” 한다. 그 장면을 생각하니 지금도 목이 메어 온다(ㅠㅠ).
내 삶이 지쳤다고 생각하며 떠난 여행에서 더 고단한 사람들을 만났다. 이들을 통해 나는 힘을 얻고 내 삶에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무작정 떠나는 여행을 통해 나는 인생을 배운다. 보고, 듣고, 느낄 마음만 가지고 떠나보면 나를 멋지게 만드는 데 도움을 줄 공붓거리는 세상 도처에 널려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나의 금혼식 여행은 남편과 함께 정처 없는 여행을 떠나는 것이었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