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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 하네케 감독 영화'퍼니 게임'…할리우드에 길들여진 중산층 비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강도 높은 공포영화가 상영될 때 '임산부와 노약자는 관람을 삼가달라' 는 경고문이 부착되지만 '퍼니게임' 은 평균적인 정신상태와 육체적 조건을 가진 이들도 쉽사리 버텨내기 힘든 '무섭다기 보다는 불편한 영화' 다.

시사회를 본 관객들의 반응도 찬탄을 아끼지 않는 측과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잔혹하게 만들어야 하는냐는 측으로 갈렸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 영화에는 시각적으로 끔찍하다거나 잔혹한 장면은 그리 많지 않다.

보통의 공포영화나 스릴러물에 비해 그런 장면들이 결코 더 많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데도 많은 관객들이 불편해 하는 것은 이 영화가 잠재적으로 발산하고 있는 '심리적인 공포' 때문일 것이다.

10대후반이나 20대초로 보이는 주인공 피터와 폴은 '케이프 피어' 에서의 로버트 드니로처럼 복수심에 불타는 것도 아니고 '양들의 침묵' 의 앤서니 홉킨스처럼 정신이상자로 분류하기도 힘든 인물들이다.

이들이 왜 살인행각을 벌이는 지 영화에서는 분명히 설명되어 있지 않다.

"나는 모든 것이 설명가능하고 완결된 형식을 취하고 있는 할리우드식 영화를 싫어한다.

영화의 내러티브가 그런 식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관객들이 참여하고 생각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고 미카엘 하네케감독은 주장한다.

따라서 하네케감독은 '퍼니게임' 을 통해 할리우드식의 내러티브와 스타일에 익숙해져 있는 관객들로부터 그 더께를 벗겨내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1942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하네케감독은 희곡과 텔레비젼 대본을 써 오다 45세가 되어서야 첫 장편영화 '일곱번째 대륙' 을 만들었다.

이후 '베니의 비디오' '우연의 연대기에 대한 71개의 단편들' 에서 폭력과 미디어의 관계를 탐구해왔다.

로베르 브레송 감독을 존경한다는 그는 또 테크놀러지와 소비주의.미디어에 둘러싸인 채 부유하 듯 일상적인 삶을 이어가는 중산층의 속물성에 대한 비판을 견지해 오고 있다.

'퍼니게임' 에서도 이러한 관점이 확인된다.

영화와 텔레비젼.컴퓨터등의 새로운 미디어는 가상현실을 출현시켜 개인들을 현실세계와의 접촉으로부터 멀리 떼어놓고 있다.

현실과의 유리는 곧 현실에서 부딪히게 될 고통으로부터의 격리를 초래하게 된다.

시물라크라와 스펙터클이 지배하는 세계를 살아가는, 공포를 잊어버린 인간들에게 폭력과 공포를 성찰하게 하는 것, 이것이 하네케 감독이 '퍼니게임' 에서 관객과 나누고자하는 '게임' 일 것이다.

15일 개봉.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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