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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의 과잉 기대 거두기가 첫 단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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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면

① 숙제하다 끝나는 ‘야자’는 그만

프로젝트팀은 지금 대웅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새 출발을 하는 기분’이라고 판단했다. 공부는 억지로 이끌려 하는 것, 자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것이란 부정적인 인식을 씻어줄 처방이 필요했다.

대웅이는 “야자(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집중이 많이 흐트러지고 학원에서 공부한 것도 기억에서 금방 사라진다”고 털어놨다. 박 소장은 “어차피 학원에 또 가야 한다는 생각에 야자 시간 공부에 집중할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사 역시 “숙제만 하다 끝나는 야자 시간, 수동적으로 듣기만 하는 학원 수업은 공부효과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내 것’으로 만드는 시간 없이 지식의 입력만 계속돼선 안 된다는 얘기다. 프로젝트팀은 수업과 야자 시간만 잘 활용해도 중·상위권까지는 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② 관심 가는 과목부터 책 펴라

김 교사는 ‘집중도 체크리스트’를 만들어볼 것을 추천했다. 수업 시간 동안 몇 분이나 집중해서 들었는지 스스로 기록하는 것이다. 또 ‘하루 한 가지씩 교무실에 가서 질문을 하라’는 미션도 던져졌다. 무작정 “풀어주세요”가 아니라 “이 문제를 이렇게 해봤는데 잘 모르겠으니 도와주세요”라고 구체적으로 요청한다.

야자 시간에는 관심이 가는 과목부터 선택적으로 공부하도록 한다. 프로젝트팀은 쉬운 문제부터 풀고 막히는 부분은 개념을 찾아서 공부하는 ‘사전식 학습’을 권장했다. 문제를 푸는 것은 막연히 개념부터 정리하는 것보다 집중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또 쉬운 것부터 접근해 작은 성취감이 쌓이면 자신감이 부쩍 늘게 된다. 숙제는 집에 돌아와서 하며,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기 위해선 옷도 갈아입지 말고 그대로 책상에 앉아 숙제부터 한다는 생각을 갖도록 요구했다.

박 소장은 “대웅이에겐 학원보다 과외가 적합하다”고 말했다. 선생님이 앞에서 공부를 가르쳐주기보다는 그저 나란히 앉아서 공부하다 대웅이가 모르는 것에 바로 답을 해주는 멘토 역할이 필요하다는 설명이었다. 공부 습관화를 위한 일종의 페이스메이커가 되는 셈이다.

③ 대웅이 믿고 결정권 줘라

무엇보다 대웅이에게 시급한 건 가족 관계의 변화였다. 프로젝트팀은 어머니의 조급한 마음과 ‘공부만 잘하면 더 바랄 게 없다’는 부모님의 마음이 대웅이를 공부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대웅이에게 공부는 압박감으로 다가오고 있다. 해야 하는데 마음은 동하지 않는 것이다. 대웅이가 관심을 갖는 분야는 미술. 현재 시간표에는 미술 공부를 위한 시간은 전혀 없다. 이 때문에 책상에 앉아 있으면서도 그림을 그리곤 한다. 일종의 돌파구를 찾는 것이다. 전자기타에 빠지는 것도 스트레스 해소 차원에서다. 박 소장은 “공부는 노동이 아니다”고 말했다. 억지로 이끌려 하는 공부는 단순한 몸동작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대학생 멘토 전씨도 “공부에 대한 부담감이 앞설수록 ‘내일부터 하고 오늘은 놀자’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대웅이네 가족 내 소통 부족도 개선해야 할 점으로 꼽혔다. 어머니 이씨는 “좋다는 학원에 보내기는 했어도 수업이 대웅이 마음에 드는지 물어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프로젝트팀은 부모님이 대웅이를 진심으로 믿고 결정권을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어떤 일에 대해 대웅이가 정말 원하는 것인지 충분히 대화를 나눈 뒤 결정을 내리라는 것. 또 대웅이의 어려운 처지를 적극 공감하는 태도가 요구됐다. 아이가 아플 때 그것에 대해 야단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적이 낮은 것에 대해 대웅이를 책망해선 안 된다는 인식을 부모가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④ 엄마가 잔소리하면 옐로 카드로 경고

프로젝트팀은 가족의 협동 시스템이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부모는 공부에 대한 말을 꺼내기보다 책·신문을 보며 같이 시간을 보내주는 것으로 행동을 바꾸기로 했다. 이씨는 매일 10분 대웅이의 공부 계획을 함께 점검할 예정이다. 물론 개입이나 잔소리는 금물이다. 대웅이는 옐로카드를 만들어 어머니가 공부에 부담을 주는 말을 하면 즉시 경고 신호를 보낸다. 류씨는 대웅이의 일에 관심을 갖고 대화하는 연습을 해나가기로 했다. 주말에는 일주일 동안 대웅이에게 있었던 일이나 고민에 대해 듣는 시간을 갖는다.

대웅이네는 프로젝트팀이 돌아간 뒤 회의를 열었다. 대화 끝에 영어·사회 학원을 그만두기로 했다. 수학·과학은 대웅이가 당분간 계속 다녀 보겠다고 했다.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주당 14시간에서 8시간으로 줄어드는 것이다. 멘토도 구해보기로 했다. 류씨는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조금씩 생활을 바꿔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최은혜 기자
사진=황정옥 기자



프로젝트 신청 사연
아이의 고민 들어주지 못해 후회스러웠어요

“아이 공부에 금전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성적이 점점 떨어지기만 하는 아들을 보는 게 속상했죠. 한없이 착한 아들인데….”

류헌(47)씨는 그동안 두 자녀의 공부를 아내에게 일임해왔다. 아이들 성적표도 거의 들여다보지 않았다. 만족스럽지 않은 성적에 호통치는 것도 지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지에 실린 ‘공부 개조 프로젝트’ 기사를 보고 류씨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열심히 돈벌어 좋은 학원 보내주는 것’으로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해온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다. 류씨는 “첫째딸은 이제 고3이 되어 정신 차리고 공부하는 것 같은데 고1인 둘째가 걱정”이라며 프로젝트팀 앞으로 e-메일을 보냈다.

신청 메일을 보낸 후 류씨는 처음으로 둘째 대웅(16·태장고1)군의 담임교사와 전화통화를 했다. 다행히 “학교생활은 잘 하고 있다”는 이야길 들었다. 하지만 그는 좀 더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찾기 원했다. 그러던 차에 공부 개조 프로젝트팀에 신청을 했고, 아빠 신청자 1호라는 연락을 받은 것이었다.

류씨는 “대웅이가 공부를 잘 하길 바라는 게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대웅이도 “이번 기회를 통해 아무 생각 없이 해오던 공부를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한번 해보려 한다”고 다짐했다.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에 흥미를 갖게 된 대웅이는 꿈을 위해서라도 새 출발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프로젝트팀과의 만남 이후 류씨는 “대웅이를 15년 이상 키워오면서 내가 얼마나 소홀했는지 반성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바쁘다는 핑계로 대웅이가 어떤 어려움과 고민을 갖고 있는지 관심을 쏟지 못한 게 후회스럽다고 했다.

“직장생활을 하는 제가 이렇게 사연을 드러내는 게 쉽진 않았죠. 그래도 아직 1학년 초반인 대웅이가 인생의 전환점을 만나 남은 고교생활을 즐겁게 하길 바랐어요.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아내와 힘을 합쳐 대웅이를 지원하겠습니다. 앞으로 지켜봐 주세요.”

과연 대웅이는 아빠의 소망대로 변할 수 있을까.

최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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