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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 점집 찾는 일 잦아졌다

중앙일보

입력

경기가 나빠지면서 점집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돈 많은 사람도 마찬가지. 불황기에 투자할 땐 불안한 마음에 역술가나 지관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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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5일 우리투자증권이 VIP 고객을 대상으로 연 ‘풍수 재테크’ 설명회.

2월 5일 서울 명동 로얄호텔 2층 로얄볼룸에선 이색 투자 설명회가 열렸다. 우리투자증권이 VIP 고객을 대상으로 풍수 재테크를 마련한 것. 세미나실엔 300여 명의 투자자가 자리를 가득 메웠다. 자리가 없어 서서 듣는 사람도 상당했다. 고객들은 연설자로 나선 대동풍수지리학회 고제희 원장의 얘기를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수첩에 메모하는 등 관심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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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원장은 “기후, 풍향, 물길 등을 파악해 좀 더 건강하고 안락하게 살아갈 터를 찾는 게 동양의 지리관이며, 풍수지리학은 과학적 학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집의 위치나 빌딩의 방향은 물론 침대 위치를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재물 복에 영향을 준다”고 강조했다. 설명회에 참석한 우애경(42·동부이촌동) 씨는 “임대사업을 하면서 풍수지리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들려줬다.

“50억 원 이상 투자해 빌딩을 샀는데 수익이 안 생기면 어떻게 해요. 투자 결정을 하기 전 점집을 찾아갑니다. 이 빌딩을 사면 임대수익이 날지, 어떤 업종의 임대인과 계약하는 게 좋은지를 물어보죠.”최근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역술가나 지관을 찾는 부자가 늘고 있다. 연초에 재테크 방향이나 자녀 결혼 운을 보는 것은 기본이고, 투자에 앞서 재물 운을 살피는 것이다.

사업가 K씨는 1월 중순 한강 르네상스 개발 소식을 듣고, 압구정동의 한강 대로변 빌딩을 알아봤다. 한강 주변이 개발되면 주변 건물의 재건축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처럼 경기가 안 좋은 시기에 투자를 했다가 오히려 손해를 보는 게 아닐지 걱정이 됐다. 그는 아는 사람 소개로 유명한 역술가를 만난 후에야 자신감을 갖고 투자를 결정했다.

역술가는 “한강이 ‘S’자로 굽어 흐르는 가운데 돌출 부분에 빌딩이 자리 잡고 있어 재물 운이 끊임없다”고 말했다. 대기업 임원 L씨는 지난해 8월 강남구 역삼동에 지은 지 20년이 넘은 오래된 건물을 샀다. 재건축을 할 요량으로 샀지만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그는 지관을 불러 건물을 그대로 나눠도 될지 상담했다.

지관은 “1층 정면에 출입구가 두 개로 나뉘어 있으면 액운이 들어오니 한쪽은 폐쇄하라”고 말했다. 건물 뒤편으론 큰 빌딩이 없어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그대로 맞고 있다며 큰 나무를 심으라고 조언했다. L사장은 오행으로 보면 금(金)의 기운을 지녔으므로 건물 외관을 노란색 계열로 바꾸는 게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L사장은 지관의 말대로 건물 일부분만 손 보는 것으로 결정했다. 반면 지관의 얘기를 듣고 투자를 포기하는 사례도 있다. 지난해 말 건설 업계 중견기업 사장은 회사 사무실이 부족해 빈 사무실을 알아봤다. 부동산 전문가를 통해 찾은 사무실은 역세권 근처로 교통이 좋고, 20층 빌딩 중 15층이라 전망까지 괜찮았다.

평소 풍수지리에 관심이 많았던 사장은 지관에게 이 빌딩에 들어가도 좋을지 상담했다. 하지만 지관은 건물 이름을 듣자마자 “다른 곳을 알아보라”고 권했다. 빌딩 이름에 ‘각이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앞으로 사업이 잘 안 될 거라는 얘기다. 실제로 그 빌딩은 주변 빌딩과 달리 임대 광고가 늘 붙어있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부자들은 자신이 풍수지리를 믿거나 점을 본다는 게 남에게 알려지는 것을 꺼린다는 점이다. 게다가 점집을 찾는 강남 부자 중엔 독실한 기독교 신자도 상당수다. 하나은행 청담 PB센터의 정희수 지점장은 “큰돈을 투자할 때 역술가를 찾거나 풍수지리를 따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100% 믿고 의지하진 않는다”고 들려줬다.

“대개는 투자 전문가가 분석한 객관적인 자료를 보고 결정을 내리죠. 이미 투자 쪽으로 70~80% 마음이 기울어진 상태에서 역술가를 찾는 거예요. 심리적인 안정감을 찾기 위해서죠. 만약 자신이 내린 결정이 역술가의 얘기와 같을 땐 투자에 자신감이 생기는 거죠.”

고제희 원장은 “기본적인 풍수 상식만 알고 있어도 재테크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집이나 빌딩을 살 때 가장 먼저 살펴볼 게 위치다. 우선 터는 물이나 도로가 둥글게 감싸는 곳이 좋다고 한다. 대표적인 곳이 한강 물이 둥글게 감싸고 있는 압구정동과 동부이촌동. 피해야 하는 집터도 있다.

특히 T자 형 도로 끝에 있는 집이다. 마치 활시위를 당기는 형상 때문에 ‘과녁배기 집’으로 불린다. 고가 아래에 있는 집도 마찬가지. 풍수지리학에선 도로를 물길로 보고 그보다 높은 곳에 살아야 한다고 한다. 집 안에 분재를 많이 두거나 넝쿨 식물이 있으면 재물 운이 나빠진다고도 주장한다. 철사로 꼬아서 만드는 분재나 나무 자체가 꼬여 있으면 운이 막힌다고 보기 때문이다. 오히려 입이 넓은 관엽식물이 재물이나 사업 운을 좋게 한다는 것이다.

큰 부자는 하늘이 내린다?

이원희의 부자 노트

누구나 부자를 꿈꾼다. 100억 원대 부자는 1000억 원대 부자를 보며 부러워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에 대한 바람은 모든 사람의 꿈일지 모른다. 하지만 누구나 부자가 되기는 힘들다. 일본의 저명한 재테크 전문가 구영한 씨는 “어리석은 자는 큰 부자를 꿈꾸고 현명한 자는 중간 정도의 부자를 노린다”고 말한다.

노력에 의해 중간 정도의 부자는 가능하지만 큰 부자는 하늘(?)에서 내린다는 뜻이다. 상담을 통해 만나본 고액 자산가들은 노력보다 운으로 자산을 늘려왔다. 현금 동원 능력이 국내 3위 안에 드는 필자의 친구인 모 재벌 2세가 2001년경 “그룹에서 특급 호텔과 골프장을 인수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왔다.

당시 필자가 아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니 2002년부터 부동산 경기가 안 좋을 전망이니 매입할 이유가 없고 매입을 하더라도 서두르지 않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친구에게 이 의견을 전달하고, 친구도 부친에게 매입 보류 의견을 전했지만 그룹 회장은 얼마 후 사들였다.

결과는 우려와는 반대로 나타났다. 2002년부터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 땅값이 폭등했고 골프장과 호텔은 금싸라기로 변했다. 몇 년 전 골프장 인근이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되면서 골프장은 특혜 시비까지 일 정도로 유명세를 치렀다. 이처럼 자수성가한 부자들을 보면 고위험의 외줄 타기를 시도해 성공을 거둔 결과가 의외로 많다. 하지만 외줄 타기가 매번 성공을 하면 좋지만 한번이라도 실패하면 파멸을 불러온다.

성공이 커 보이지만 그 이상의 위험을 감수한 결과다. 중간 정도의 부자는 운보다 노력으로 될 수 있다. 습관을 바꾸고 경제 지식을 쌓고 좋은 인맥을 만들면 중간 정도의 부자는 충분히 가능하다. 어찌 보면 중간 정도의 부자가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 돈이 너무 많으면 나중에는 돈 때문에 더 많은 걱정이 생기기 때문이다.

부자 고객만 10년 이상 관리한 PB팀장의 얘기다. “돈이 너무 많으면 돈에 치여 사는 거 같아. 항상 돈 관리 하느라 바쁘고 세금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딱 50억 원만 갖고 있는 게 제일 좋은 거 같아. 평생 걱정 없이 먹고 살 수 있거든.”

이원희 프리미엄 R&I 사장은

서울경제 재테크 담당 기자,

HSBC은행 PB팀장, 콜드웰뱅커 코리아 해외사업팀장,

뉴스타USA 기획담당이사 등을 거쳐 현재 강남에서 고액 자산가의 투자 상담을 맡고 있다.

글 염지현 기자·사진 정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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