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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부… 그러나 늘 가슴 저미는 애틋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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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처 또는 나의 전부.’

②가족과의 관계 #MANAGEMENT|CEO로 산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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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브스 CEO 패널인 남승우 풀무원 사장이 요리 강습을 받고 있다.
대한민국 CEO의 가족에 대한 고백이다. 우리는 패널 CEO에게 “가족이란 나에게( )이다”라는 제시문을 주고 ( )를 채워 달라고 했다. 이번 서베이에 응한 83명의 CEO 중 각각 13%가 안식처와 전부라고 적었다. 원동력(8%), 고향-동반자(이상 각각 6%) 등이 뒤를 이었다.

보물-선물(이상 각각 5%), 분신(4%) 등도 비교적 여러 명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써 가족은 CEO에게 안식처, 힘의 원천, 소중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가족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가족이란 “가슴을 은은히 저미는 듯한 애틋함을 안겨주는 행복”이라고 풀이했다. 가훈으로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가장 많이 적었다. 7%가 “할 일을 다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는 뜻의 이 말을 적어 넣었다.

사랑하며 살자-최선을 다하자-성실(이상 각각 5%) 등이 그 뒤를 이었다. 회사 일에 투입하는 시간과 가족과의 대화, 가사 분담 등 가정사에 쏟는 시간의 비율을 최적화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회사 일에 투입하는 시간을 ‘100’이라고 할 때 가정사에 얼마의 시간을 투입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느냐고 패널들에게 물었다.

가장 많이 답한 것은 30이었다. 31%가 이렇게 답했다. 그러나 평균은 41.7이었다. 10대 4의 비율로 시간을 안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 것이다. 7%는 100이라고 답했다. 회사 일과 가정사 간에 완벽한 산술적 균형을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흥미롭게도 젊을수록 가정사의 비중을 크게 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40대 이하 46.4, 50대 37.6, 60대 이상 36.7).

또 종사 기업의 규모가 클수록 현저하게 가정사의 비율을 낮게 잡고 있다(대기업 35.2, 중견기업 42.2, 중소기업 48.3). 주관적으로 평가한 ‘가정에의 충실도’가 낮을수록 가정사에 많은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정에의 충실도는 가정사에 실제로 투입하는 시간 양을, 가정사에 투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간 양으로 나눈 것이다.

예를 들어 한 대기업 CEO의 경우 회사 일에 투입하는 시간을 100이라고 할 때 “가정사에 30의 시간을 투입하는 게 바람직하고 실제로는 10의 시간을 쓰고 있다”고 답했다. 이 CEO의 가정에의 충실도는 33%다. 이번 서베이에서 가정에의 충실도가 10% 이하인 CEO는 평균 56.7, 즉 회사 일에 쓰는 시간의 절반 남짓을 가정사에 써야 한다고 답했다.

반면 가정에의 충실도가 90%를 초과하는 CEO들은 평균 28.0의 시간을 가정사에 투입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따라서 이 같은 조사 결과는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가정에의 충실도에 대한 자기 기준이 높은 CEO일수록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CEO들이 가정사에 쏟는 시간은 회사 일에 투입하는 시간 양의 22.5%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는 회사 일에 투입하는 시간이 ‘100’이라고 할 때 가정사에 실제로 얼마의 시간을 투입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대기업 CEO들은 가정사에 쏟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대기업 19.3, 중견기업 24.1, 중소기업 24.1).

업종별로는 금융업과 제조업 종사 CEO들이 가정사에 쏟는 시간이 비교적 짧았다(제조업 20.0, 서비스·건설·유통업 27.5, 금융업 14.4, 벤처 21.1). 오너 경영인은 전문경영인에 비해 가정사에 쏟는 시간이 길었다. 종교가 있는 사람들도 가정사에 투입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긴 것으로 집계됐다. 또 주관적으로 평가한 가정에의 충실도가 낮을수록 가정사에 투입하는 시간이 짧은 것으로 조사됐다.

사랑한다, 고맙다, 미안하다

가정에의 충실도는 평균 48.2%였다. 즉 패널 CEO들은 스스로 가정사에 투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간 양의 절반 미만을 가정에 쏟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는 CEO에게 가족이 어떤 존재인지 간접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이런 가정의 질문을 던졌다. “해외 출장을 마치고 귀국 길에 오른 비행기가 추락하고 있습니다. 단 한 마디만 남길 수 있다면 누구에게 무슨 말을 남기시겠습니까?”

거의 모든 CEO가 가족에게 한마디 남기고 싶어했다. 상위권을 차지한 것은 이런 말들이었다. 사랑한다(24%), 고맙다-미안하다(이상 각각 13%). 행복했었다-행복해라(이상 각각 4%), 고생했소-(자녀에게) 어머니 잘 모시고 우애 있기를-가족을 부탁한다(이상 각각 2%)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영국의 철학자 G 무어는 “인간은 갖고 싶은 것을 찾아 세상을 방황하다 가정에 돌아왔을 때 비로소 그것을 발견한다”는 말을 남겼다. 가정의 상황이지만 CEO들도 세상과의 이별을 앞두고 가족을 떠올렸다. 이들과 가족을 이어주는 정서적인 유대감은 사랑, 고마움, 미안함 같은 것들이었다.

김경진 한국EMC 사장은 이 질문에 “지금 시애틀 가는 비행기 속이라 실감이 난다”며 “당연히 가족에게 ‘사랑한다고, 고맙고 덕분에 행복하게 살았다’고 얘기할 것”이라고 답했다. 최진영 디지털대성 사장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남기고 싶다고 적었다. “비록 함께한 시간은 짧지만 너희를 안고서 사랑한다고 말하고 입맞춤한 횟수는 앞으로 너희가 만날 그 누구와의 포옹, 입맞춤보다도 많을 것이라고 아빠는 자신한다. 어른이 되더라도 그렇게 너희를 사랑한 아빠가 있었다는 사실을 부디 잊지 말아라.”

그렇다면 CEO들은 어느 때 배우자에게 가장 미안한 마음이 들까? 패널의 45%가 ‘자신의 부재(不在)’라고 답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13%), 함께 휴가·여행을 갈 수 없을 때(7%), 거의 매일 혼자서 저녁 식사를 하게 할 때(6%), 주말에 근무해야 할 때-늦게 귀가할 때(이상 각각 5%), 함께 병원에 가 주지 못할 때(4%) 등이다.

서구의 유명 인사들이 사임을 발표하면서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라고 설명할 때가 있다. 기자가 오래 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읽은 격언엔 이런 것이 있었다. “눈을 감는 순간 더 많은 시간을 회사 일에 빠져 지냈어야 했다고 후회하는 사람은 없다. 대부분 더 많은 시간을 가족과 보내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가정의 상황이지만 CEO들이 마지막 순간에 가족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하는 것도 더 많은 시간을 공유하지 못한 데 대한 후회와 자책감 때문일 듯하다. CEO들이여, 오늘부터라도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늘려 보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의 답변에 귀 기울여 보자.

“회사 일에 투입하는 시간이 100이라면 40~50의 시간을 가정에 써야겠지만 그러면 일할 시간이 남겠습니까? 투입하는 시간의 절대량보다 시간의 질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밖에 이런 것들이 배우자에게 가장 미안할 때로 꼽혔다. 바깥 일에 열중하느라 가정에 신경을 못 쓸 때(13%), 배우자가 아프거나 건강이 나빠졌을 때(4%), 일과 관계없이 술 마셨을 때-생일을 못 챙겼을 때(이상 각각 2%). 최경훈 예스코 사장은 이럴 때 배우자에게 가장 미안하다고 적었다.“과음한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아내 얼굴이 푸석하더라고요. 새벽에 내가 데리고 들어간 직원들 뒤치다꺼리하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잔 탓이었죠. 어찌나 미안하던지….”

‘한국적 CEO’의 자화상이랄까?

한 패널 CEO는 “아내와 대화를 하는 동안 갑자기 회사의 중요한 일이 생각날 때가 있는데, 그러다 보면 아내의 이야기를 놓칠 때가 있다”고 적었다. CEO는 어쩌면 24시간 일하는 직업인지도 모른다. 최진용 일진전기 사장은 “아내가 ‘먼 바다라도 한번 구경하고 싶다’고 말할 때 가장 미안하다”고 답했다.

며칠 휴가를 내 쉬어 본 적이 없어 여행을 함께 간 일이 없기 때문이다. 황우진 푸르덴셜생명 사장은 “한 달에 한 번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게 목표인데 그나마 그 약속을 못 지킬 때 아내에게 가장 미안하다”고 답했다.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은 “현대의 최대 불행의 하나는, 가정이 인간에게 깊은 만족을 주지 못하는 점”이라고 설파했다.

CEO들도 때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설을 앞두고 우리는 패널들에게 이런 가정의 질문을 던졌다. “설에 가족과 떨어져 보낼 수 있다면 무엇을 해 보고 싶습니까?” 일시적이나마 CEO에게 가정 내지 가족의 대체재가 있다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가장 많이 답한 것(복수 응답)은 55%가 적은 여행(템플 스테이, 한적한 곳에서의 휴식 포함)이었다.

다음은 3분의 1가량(34%)이 답한 독서였다. 등산 등 운동(26%)도 비교적 많이 답했다. 사색(8%), 영화 감상(7%) 등이 그 뒤를 이었다. CEO들은 가족과 함께 있으면서 이런 활동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패널들에게 “일주일 동안 무인도에서 홀로 지내야 하는데 책은 단 한 권만 가져갈 수 있다면 어떤 책을 가져가겠느냐”고 물었다.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책을 알아 보기 위한 질문이다. 가장 많이 고른 것은 25%가 답한 <성경>이었다. <삼국지>도 15%가 답했다. 백과사전과 <무인도에서 살아남기>도 각각 2%가 적었다. 나머지는 각각 한 명씩 답했다. CEO가 평소 배우자 등 가족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구매하는 개인용품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

CEO 본인이 구매 결정권자인 품목들이다. 가장 많이 답한 것은 패널의 27%가 적은 옷(양복, 와이셔츠 등)이었다(복수 응답). 스포츠용품(23%), 책(17%), 넥타이-신발(이상 각각 16%), 모발 케어 제품 등 화장품(8%), 문구류(6%), 와인(5%) 등이 그 뒤를 이었다. 6%는 대부분의 개인용품을 직접 구매한다고 밝혔다.

2%는 차량도 직접 산다고 답했다. 바쁜 CEO들이 가사 분담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가족을 위해 어쩌다 음식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CEO들에게 “만들 줄 아는 음식(요리) 중 가장 자신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가장 많이 답한 것은 15%가 적은 라면이었다.

다음은 김치찌개(11%), 볶음밥(7%), 스파게티(6%), 된장찌개(5%) 순이었다. 19%는 답을 하지 않았다. 가장 많이 답한 것이 라면이라는 사실은 서글픈 현실이다. 한 패널 CEO는 이렇게 적었다.“솔직히 라면 끓이는 것밖에 할 줄 아는 요리가 없습니다.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지난해 실시한 포브스 CEO 패널 서베이 ‘한국의 CEO를 말한다’에서 응답자의 80%는 새벽 6시 이전에 일어난다고 답했다.

평균 기상 시각은 5시52분이었다. CEO는 아침형 인간인 것이 밝혀진 셈이다. 이런 라이프스타일은 그러나 CEO란 자리가 요구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른 기상은 어쩌면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것일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공적, 사적으로 아무 일과도 없다면 잠자리에서 몇 시에 일어나겠느냐”고 물었다.

응답 시각은 평균 7시11분이었다. 지난해 조사 결과와 비교해 보면 평소 기상 시각보다 1시간 20분가량 늦춰진 셈이다. CEO는 자녀의 직업으로 어느 일을 선호할까? “만일 뜻대로 된다면, 가장 기대가 큰 자녀를 어느 직업에 종사시키고 싶으냐”고 물었다. 가장 많이 답한 것은 19%가 답한 교육자(교수, 학자 포함)였다.

‘경영자’와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시키겠다’는 응답(각각 12%)이 다음으로 많았다. 법관-금융 전문가(이상 각각 7%), 정보기술(IT), 나노기술(NT) 등 첨단 분야 전문가-예술가(이상 각각 5%)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오너 경영자 중 자신의 사업을 잇게 하겠다는 사람은 2%에 불과했다. 이와 같은 의미로, 경영자를 시키고 싶다고 답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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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패널 서베이 이렇게 했다

3월호 서베이엔 포브스 CEO 패널 100명 중 83명이 참여했다. 연령별로는 40대 이하가 25명, 50대 29명, 60대 이상 21명(무응답 8명). 평균 연령은 54세다. CEO로서의 재임 기간은 평균 11년, 경영체제별로 보면 오너 경영인이 37명, 전문경영인 42명(무응답 4명)이다. 이들 CEO의 종사 기업은 규모별로는 대기업 28곳, 중견기업 22곳, 중소기업 29곳(무응답 4곳)이다.

업종별로는 제조업 30곳, 서비스·건설·유통업 30곳, 금융업 8곳, 벤처 11곳(무응답 4곳)이다. 이번 서베이는 1월 6일부터 2월 4일까지 e메일로 실시됐다. 일부 답변서의 회수는 팩스를 통해 이뤄졌다. 실사는 박열음·구수경 포브스코리아 인턴기자가 맡았다. 응답 집계를 위한 자료 처리는 중앙일보 조사연구팀 최지연 연구원이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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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란 나에게( )이다(응답률 순)
1 안식처(13%)
1 나의 전부(13%)
3 원동력(8%)
4 고향(6%)
4 동반자(6%)

우리 집 가훈(응답률 순)
1 진인사대천명(7%)
2 사랑하며 살자(5%)
2 최선을 다하자(5%)
2 성실(5%)

배우자에게 가장 미안할 때(응답률 순)
1 필요로 하는데 곁에 없을 때(45%)
2 가정에 신경 못 쓸 때(13%)
3 배우자가 아프거나 건강이 나빠졌을 때(4%)
4 일과 관계없이 술 마셨을 때(2%)
4 생일을 못 챙겼을 때(2%)

출장길 비행기가 추락한다면
남기고 싶은 말(응답률 순)
1 사랑한다(24%)
2 고맙다(13%)
2 미안하다(13%)
4 행복했었다(4%)
4 행복해라(4%)

일주일 동안 무인도서 홀로 지낸다면
가져갈 책 한 권(응답률 순)
1 <성경>(25%)
2 <삼국지>(15%)
3 백과사전(2%)
3 <무인도에서 살아남기>(2%)

가장 자신 있는 요리(응답률 순)
1 라면(15%)
2 김치찌개(11%)
3 볶음밥(7%)
4 스파게티(6%)
5 된장찌개(5%)

글 이필재 편집위원·사진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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