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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판 소송’ 윤기현 9단 기사 사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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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바둑판은 탄력 좋고 무늬 수려한 비자판이 최상이고 계수나무·은행나무 판이 그 다음이다. 사진은 윤기현 9단과 김영성씨 유족 간에 소송이 걸렸던 두 개의 비자 바둑판 중 우칭위안과 린하이펑 9단의 사인이 들어 있는 판. [타이젬 제공]

 한국 바둑계 대표적 원로기사 중 한 사람인 윤기현(67) 9단이 26일 50년 이어 온 기사 직을 사퇴하고 바둑계를 떠났다. 윤 9단은 한국기원 이사였던 김영성씨 유족과 ‘억대 바둑판 소송’을 벌인 끝에 1심과 2심, 그리고 대법원에서 잇따라 패소하며 온라인에서 팬들의 공격을 받아왔다. 26일 열린 한국기원 정기이사회(이사장 허동수)는 윤 9단의 기사 품위 손상에 대한 징계안을 처리할 예정이었으나 윤 9단이 자진 사퇴하자 이를 추인하는 선에서 끝냈다.

윤기현 9단은 1959년 입문해 87년 9단이 됐다. 68년 일본에 건너가 가노 9단과 기타니 9단의 문하생이 됐고, 귀국한 뒤 국수전에서 2년 연속 우승(71, 72년)해 당대 최강자 김인 9단의 강력한 라이벌이 됐다. 우승 4회, 준우승 8회. MBC 해설을 14년, 기사회장을 12년 맡았고 기전 창설에도 공헌하는 등 핵심 원로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문제의 바둑판 사건으로 인해 프로 바둑 사상 세 번째로 자의반 타의반의 불명예 퇴진을 하게 됐다.

#억대 바둑판 사건은

부산의 기업인 김영성씨는 암으로 사망하기 전 두 개의 비자 바둑판을 친구인 윤 9단에게 맡긴다. 하나는 일본 바둑의 대 원로인 세고에 9단과 일본 대신들의 사인이, 다른 하나는 기성 우칭위안 9단의 사인이 있는 판. 김영성씨의 유족들은 나중에 윤 9단에게 판을 돌려달라고 요구했고, 윤 9단은 우칭위안 판 하나만 돌려줬다 (세고에 판은 윤 9단이 이름을 밝히지 않은 누군가에게 1000만 엔에 팔았다고 한다). 윤 9단은 “고인이 바둑판을 팔아달라면서 하나는 나에게 선물했다”는 주장이었고 가족들은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며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가족들의 손을 들어줬고, 윤 9단은 대법원까지 항소했으나 패소했다.

세고에 9단은 전대의 고수로 우칭위안 9단의 스승이고, 말년에 한국의 조훈현을 제자로 받아들인 사람. 세고에 바둑판이 한국까지 온 것은 세고에의 며느리가 시아버지의 체면을 생각해 친아들 같은 조훈현 9단에게 일본이 아닌 곳에서 팔아주기를 부탁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조 9단도 증인으로 나서는 등 재판은 천연 조개 바둑알에까지 비화하며 복잡하게 전개됐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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