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전율의 비결’ 식당서 한 수 배운 조선소 사장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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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의 남상태(59·사진) 사장은 최근 한 임원에게 “회사 뒤편에 있는 ‘산불등심집’에 가서 점심 한번 먹어봐”라고 권했다. 점심을 먹고 온 임원에게 남 사장은 어떠냐고 물었다. “된장찌개가 아주 맛있던 데요”라고 대답하자 남 사장은 “다른 것 더 느낀 것은 없고…”라며 재차 물었다. 묵묵부답인 그 임원에게 남 사장은 “그 집 회전율이 굉장히 높지 않아? 조선소 현장 운용하는 데 그 집에서 배울 게 없는지 연구 좀 해봐요”라고 말했다.

남 사장은 요즘 부쩍 효율성을 강조한다. 조선시장 상황이 워낙 나빠 수주가 잘 안 돼 생산성을 높여야 비용을 줄이고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20일 오후 기자는 남 사장과 함께 서울 무교동 대우조선해양 뒤편의 허름한 산불등심집을 찾았다. 입구에서 잠시 기다린 뒤 낮 12시쯤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테이블 9개로 주인과 조리사, 홀담당 등 4명이 일했다. 66㎡(20평)가 채 안 돼 보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된장찌개·밥·고등어조림 등이 나왔다. 남 사장은 “이 집은 음식이 빠르게 나오고 손님들이 줄 서 있는 게 보이니 금방 먹고 일어서게 돼요”라며 “빠른 서비스가 가능한 것은 미리 준비했기 때문일 테고 이는 점심 메뉴를 된장찌개 한 가지로 단순화시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식당은 점심에는 된장찌개, 저녁에는 등심만 판다. 일행이 밥을 먹는 데 걸린 시간은 약 15분.

남 사장은 “이렇게 따지면 점심 1시간 동안 테이블당 4회전하는 것”이라며 “조선소도 생산 품목의 단순화와 도크 회전율 상승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양한 배를 만들면 효율이 떨어지므로 수주 선박 종류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또 각종 기자재는 최적의 상태로 준비해 놔야 배를 빨리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수년간 수주 제품을 단순화시켰다. 2004년 7개 선종, 18개 형태의 선박을 수주했으나 지난해에는 5개 선종 5개 선형으로 줄였다. 회사의 주력제품인 LNG선과 초대형 유조선(VLCC), 그리고 수요가 많은 컨테이너선 등에 집중해 이들의 매출 비중을 높여 왔다. 대우조선은 도크의 회전율을 지속적으로 높여 현재 도크당 연 9.5회전 수준인데 올해는 10회전으로 높인다는 목표다. 한 개의 도크에서 한 해 10번 이상의 선박 진수를 하겠다는 것이다.

남 사장은 식당 입구에 서 있는 주인을 보고 “효율적인 업무지시도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주인이 홀 전체를 바라보며 빈자리가 나면 종업원에게 바로 자리를 정리하고 음식을 서비스할 수 있도록 한 뒤 손님을 앉힌다는 것이다.

그는 “이 역시 선박을 만들 때 기자재와 블록(선박의 단위 구성품)의 위치 파악과 연결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블록과 각종 기자재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해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줄여야 한다는 설명이다. 대우조선은 현재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통해 중앙에서 블록의 위치를 파악해 불필요한 이동을 줄이고 있는데 물류 흐름을 더 개선할 여지가 없는지 연구 중이라고 했다.

남 사장은 “빠른 것도 빠른 것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맛이 좋아야 한다”며 “그런 뒤 가격이 적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식당의 된장찌개는 1인분에 7000원이다. 남 사장은 “조선소도 좋은 품질의 배를 값싸게 공급해야 고객이 늘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남 사장은 “대기업이지만 작은 식당에서도 배울 것이 있으면 배워야 한다”며 “조선사나 식당이나 고객의 니즈(needs)를 찾아 만족시켜야 생존하고, 그 요체는 맛(품질)과 신속한 서비스(제품 공급)”라고 말했다.

염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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