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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유출 두고 볼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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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이른 아침 등교하는 중학생들 모습. 지역 명문고 진학을 위한 학구열이 뜨겁다.[조영회 기자]

대기업 천안지사에 다니는 강신일(50)씨는 어려서부터 우등생 소리를 듣던 큰아들이 천안 ‘빅3’ 고교 중 한곳에 무난히 합격할 때만 해도 내심 명문대 진학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러나 기대했던 아들이 올해 대학입시에서 수시 뿐 아니라 정시모집에서도 다 떨어지자 충격을 받았다. 강씨는 “천안에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큰 아들은 미국으로 유학 보내고 작은 아들은 아예 서울에 있는 중학교로 보냈다. 특목고 응시제한제로 수도권 유학이 더 느는 추세다.

 명문고의 정의(定義)가 ‘일류대 진학률이 높은 학교’로 협소하게 해석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공부 좀 한다 하는 아이들이 타 지역 고교진학을 당연시 하는 세태를 마냥 두고 볼일은 아니다. 그 동안 천안에 인재를 빼앗겨 온 아산은 그렇다 치고 성적상위 학생들이 몰린다는 천안은 왜 명문대 진학률이 이 모양인가.

 충남도교육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8년 천안에서 특목고나 자사고 등 타 지역 명문고로 빠져나간 학생은 모두 133명이고 아산은 39명이다.(충남외고 포함. 천안 48명, 아산 18명) 지난 2007년에는 천안 94명, 아산에서는 19명의 인재가 ‘내 고장 학교’를 버리고 타 지역 학교를 찾아 떠났다. 이밖에 아산의 경우 중학교 성적 상위 10% 학생 중 30% 정도가 해마다 천안에 있는 고교에 진학하고 있다.

 최근 교육당국이 발표한 학업성취도 분석 결과를 보면(표 참조) 천안과 아산 모두 초등학교에서 중등, 고등으로 올라갈수록 주요과목별 학업성취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조사에 대한 신뢰성을 두고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교육현장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감지되고 있는 것만큼은 틀림없다. 초등학교부터 성적 상위자 상당수가 지역을 떠나고 있는 상황이다.

 사학시장은 물론 교육감 예비후보들조차 교육프로그램 부재를 공통의 문제로 지적한다. 비슷비슷한 성적의 학생들을 모아놓고 3년 동안 밤늦게까지 학교에 잡아두는 것 말고는 변변한 심화학습 프로그램 하나 없는 것이 지역교육의 현실이다. 천안의 한 고교 교장은 “부임해 보니 무작정 잡아두는 야간자율학습이 가장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더라”고 고백했다.


 천안·아산 중학생들은 고교 입시부터 진을 뺀 뒤 진학하면 내신 관리에 급급해한다. 중간 그룹을 뚫고 올라가지 못하면 모두 하향평준화의 길로 끌려가는 형국이다. 국어가 부족하면 국어를 더 배우고 수학을 잘하면 더 잘하게 만드는 개별·심화학습 프로그램 마련이 절실하다. 하지만 학교는 여전히 그룹학습에 치중하고 있다.

 스타교사 부재도 문제다. 80년대 짜인 커리큘럼을 아무런 비판 없이 따라가는 무성의한 교사들이 적지 않다. 말이 자율학습이지 밤늦게까지 반 강제로 학생들 잡아두고 나서 “사고치는 학생이 없다. 전인교육 했다”고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사학시장은 교육프로그램 개발하고 스타강사 하나 배출하기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한다.

투자가 교육성과에 비례한다는 말이 있다. 교육프로그램 개발, 기숙사 등 교육시설개선, 장학금 확충, 우수교사양성 등을 위한 투자가 절실하다.

장찬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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