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여기자 억류, 문제 일으킬 능력 있다는 시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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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호 05면

-북한이 미국의 여기자 2명을 억류하고 있다. 미국의 식량 지원도 거부했는데.
“북한이 정교하게 의도한 정책은 아니라고 본다. 북한은 모든 이에게, 특히 서울과 워싱턴의 인사들에게 자신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상기시키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다. 자신들이 외면당하거나, 요구하는 이슈들이 주목받지 못한다고 여기면 그들은 계속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해결책은 대화다. 불거진 문제들이 모두 테이블 위로 올라가야 한다.”

94년 제네바 협상 주역, 갈루치가 말하는 지금의 한반도

-다음 달 4~8일 인공위성(미사일)을 발사하겠다고 한다. 미국은 어떻게 대응할까.
“과도하게 다루지 말아야 한다. 미사일 발사는 분명히 북한의 장거리 탄도 미사일 능력을 향상시키는 조치로 매우 유감스러운 것이다. 그렇다고 북한이 해 온 위협에 본질적 변화가 생긴 게 아니다. 북한의 협상용 정치 행위이므로 크게 부각할 필요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유엔 안보리 제재 얘기도 나온다.
“나는 미국이 제재를 결정한다면 깜짝 놀랄 것이다. 지금 제재를 앞세워야 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미사일 발사 다음 단계에 필요한 것은 워싱턴과 평양 사이의 진지한 대화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94년 제네바 협상에서 카운터파트였던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은 여전히 대미 협상의 콘트롤 타워에 있다. 그에게 한마디 한다면.
“‘워싱턴에 새 행정부가 들어섰다. 오바마 정권은 부시 정권 말기에 시작한 프로세스가 계속되길 바란다. 새 행정부는 북한이 요구하는 과감한 정치적 이슈(관계 정상화 등)와 미국이 우려하는 북핵 이슈 모두가 완전히 해결되길 원한다. 미국과의 대화는 물론 6자회담에서도 진지한 의도와 태도로 임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다.”

-94년 남북 관계는 얼어붙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북·미 협상을 반대하지 않았나.
“김 대통령은 북·미 협상을 중단시키려 하지 않았다. 첫째, 그는 북한의 진의를 의심했다. 둘째, 협상과 관련한 모든 것을 미국이 한국에 실시간 알려주고 협의하길 원했다. 셋째, 협상 결과에 남북 대화 재개가 꼭 포함돼야 한다고 했다. 그런 포인트들은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김 대통령과 한국 정부 내 인사들은 북·미 협상의 전망에 회의적이었던 것 같다. 그럴 만했다. 당시 협상은 모험적인 시도였다. 우리는 심각하게 시도해 봤고, 해 봤더니 결과가 괜찮게 나왔다.”

-현재 남북 관계는 94년과 비슷해 보인다. 그래도 북·미 대화는 이뤄져야 하나.
“질문이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화로 상을 주면 안 된다’는 취지로 들리는데, 이미 미국은 대화를 중단하는 ‘벌’을 내려 봤다. 북한뿐 아니라 이란에도 해 봤다. 좋은 방법이 아니다. 문제가 생기면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 방안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나는 ‘외교’를 믿는다. 북한이 나쁜 행동을 하든 하지 않든 대화해야 한다. 6자회담의 틀 안이라면 이상적이지만 6자회담 밖에서 북·미가 몇 차례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미 행정부가 북한 문제를 긴급 현안에서 제쳐 놓은 것은 아닌가.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 특사가 전임도 아닌 데다 성 김 6자회담 대표도 급수가 낮아 그런 얘기가 나온다.
“미 행정부 내에서 매일 아침 북한 관련 회의가 열릴 수도,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내부 사정은 모르는 것이다. 보즈워스처럼 나도 대학원장을 하면서 러시아·이란과 협상했었다. 보즈워스는 대단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고위급 특사이고 성 김도 경쟁력 있는 전문가다. 솔직히 말하면 한국은 미국이 북한과 하는 모든 일에 항상 예민하게 반응한다. 물론 한국의 안보와 직결돼 있고 북한과의 미래 관계도 있기에 당연하다. 이해한다. 그러나 나는 좀 더 인내심을 갖고 판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지켜보라고 말하고 싶다.”

-94년으로 되돌아간다면 어떻게 달리 협상할 것인가.
“한 가지 있다. 북한에 ‘우라늄 농축과 관련된 어떤 일도 해선 안 된다’고 직설적으로 말했다면 북한이 파키스탄에서 우라늄 원심분리기를 쉽게 구매하진 않았을 것이다. 북핵 문제가 비틀린 게 이것 때문이 아니냐. 부시 행정부는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2002년 가을 그렇게 했다. 우리도 당시 이를 논의하긴 했지만 북한에서 아무것도 얻어낼 수 없는 이슈라고 결론을 냈었다.”

-북한이 정말 핵을 포기하겠나. 레드라인은 뭔가.
“정치적 이슈들이 타결될 수 있으면 가능성이 꽤 있다고 본다. 북핵 문제에서 가장 걱정되는 게 시리아로의 핵 기술 이전 등 확산 문제다. 테러리스트들의 수중에 핵 물질이 들어가는 경우 수백만 명의 미국인이 위험에 처하게 된다. 북한의 핵 확산은 반드시 저지해야 할 레드라인이다.”

-북한이 94년처럼 경수로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는데.
“경수로는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지불할 수 있는 대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북한 입장에서 보면 최선의 이익은 아니다. 다른 발전소들이 북한에 필요한 에너지를 더 효율적이고도 싸게 공급할 수 있다. 어쨌든 북한의 핵 포기가 분명해야 한다.”

-북한 권부의 상황이 불안해 보인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아시아 순방길에 북한의 후계 문제를 언급했을 때 놀라긴 했지만 그런 솔직함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김정일 위원장이 언제 사망할지 아무도 모른다. 북한의 극적인 변화가 예상된다고 해서, 그때까지 할 일을 하지 않아선 안 된다. 지금 닥친 상황을 최선으로 다뤄야 한다. 여유가 없다.”

-오바마 행정부에 기용될 것이란 관측이 많았는데, 섭섭한가.
“좀 섭섭하다. 오바마 대통령을 한 번밖에 안 만났지만 아주 존경한다. 어느 누가 오바마 행정부에서 일하고 싶지 않겠나. 아주 멋진 일이 될 텐데. 괜찮다. 앞으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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