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선 남을 위해 쓰는 돈이 내 돈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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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젊어서는 버는 돈이 내 돈이고, 늙어서는 쓰는 돈이 내 돈이죠.”

김윤종(60·사진) SYK글로벌 대표 겸 사회복지법인 꿈·희망·미래재단 이사장의 ‘돈에 대한 생각’은 이랬다. 그는 미국발 한국인 벤처 대박신화의 주인공이다. 1999년 미국에서 창업했던 인터넷 네트워크 교환장비 벤처기업인 자일랜(Xylan)을 창업 6년 만에 프랑스 알카텔에 20억 달러에 매각했다.

그는 앞서 84년 1만 달러를 들고 창고에서 창업했던 광역통신망 회사인 파이버먹스를 6년 만에 5000만 달러에 매각하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세운 자일랜까지 잇따라 성공시킨 것이다. 그래서 ‘벤처 창업의 교과서’로 통하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2007년 한국으로 영구 귀국한 뒤엔 자선사업과 사회사업을 하며 돈을 잘 쓰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물론 벤처투자회사인 SYK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는 돈을 묻어두는 투자일 뿐, 본업은 사회사업”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왜 사회사업을 하게 됐나.

“사회사업이야말로 돈을 많이 번 내가 인생을 최고로 즐기는 방법이다. 이젠 정말 행복해졌다.”

-그렇다면 사회사업을 하기 전에는 인생이 즐겁지 않았다는 말인가.

“한꺼번에 돈을 많이 번 뒤 골프장을 사서 운영하고, 파티와 여행을 원없이 했다. 그런데 3년쯤 지나니 인생이 지루해지더라.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까 고민하다 한국 여행을 하며 느낀 다이내믹함에 반해 귀국하게 됐다. 그리고 사회사업을 하며 행복해졌다.”

-사회사업은 한국에서 처음 시작한 것인가.

“98년 미국에 사회사업 재단을 세웠다. 미국에선 자수성가한 사업가들이 꼭 재단을 만들어 기부를 한다. 이렇게 기부하는 돈은 세금을 물지 않기 때문에 일거양득이다. 그러다 어차피 사회사업을 할 거라면 내 고향인 한국에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귀국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을 하나.

“일단 불우청소년들의 대학 보내주기 사업이 가장 크다. 고등학생 때부터 용돈과 등록금을 대주기 시작해 대학에 가면 전액장학금을 준다. 지금 한국에 200명, 연변 조선족 400명 등 600명에게 상시로 주고 있다. 앞으로는 100명 정도를 더 늘릴 거다.”

- 장학사업에 주력하는 이유는.

“아버지 사업이 망하면서 누나들이 학교를 중퇴했다. 그래서 공부를 해야 할 때 못하는 한을 안다. 나는 사업가다. 돈을 쓸 때도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한의 산출을 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교육만큼 효율적인 투자는 없다. 연변 조선족의 경우는 한국 학생 지원금의 20% 정도면 되기 때문에 더 효율적이다.”

-북한에서도 자선사업을 한다고 들었다.

“나는 한국말을 하는 모든 사람들을 돕고 싶다. 그래서 북한에 들어갔다. 나진·선봉에 갔더니 버스가 없어 사람들이 장에 한 번 가려면 등짐을 지고 2~3일씩 걸어가더라. 그래서 버스 7대를 주고, 버스 정류장을 만들어줬다. 타이어 교환 등 매년 7만 달러 정도만 쓰면 이곳 사람들이 버스를 탈 수 있다. 빵 공장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한해 1억5000만원을 들이면 5000명이 매일 빵을 한 개씩 먹을 수 있다. 이보다 더 효율적인 투자가 어디 있나.”

-돈을 많이 벌기도 했고, 많이 쓰기도 한다. 둘은 어떻게 다른가.

“돈을 벌 때는 정말 숨도 못 쉴 만큼 일만 했다. 그것도 성취감이 크다. 돈을 쓸 때는 지루하게 쓰는 방법과 행복하게 쓰는 방법이 있다. 파티와 여행 등 자신을 위해 쓰는 일은 금세 지루해진다. 하지만 3만원이면 1년 내내 한 어린이가 빵을 먹을 수 있는 것처럼, 돈이 귀하게 쓰이는 걸 보면 돈을 번 것에 대한 보람과 행복을 함께 느끼게 된다.”

-최근 강연을 많이 다니고 있는데.

“전국의 대학과 연구소를 돌며 창업 노하우와 미국의 경영환경을 알려주는 강연을 하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노하우가 한국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고 있다.”

-벤처사업가 기질은 사회복지법인 운영에서도 유효한가.

“돈을 지원하는 단계에서 더 나가 이젠 직접 불우이웃을 돕는 방법을 찾아보고 있다. 우리 복지재단이 최근 서울 방화6지구 복지관 운영을 맡은 것도 그 일환이다. 복지재단에 근무하는 40여 명의 복지사가 정부 지원을 받는 최저 빈곤층보다 이게 미치지 못하는 차상위 빈곤층을 위한 사업거리를 찾고 있다. 이 복지재단에서 연간 쓰는 기금은 재단자산의 운영수익인 20억원 정도다. 앞으로 규모를 좀 더 늘릴 계획이다.”

글=양선희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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