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KAL機사고 왜 일어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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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항공기는 공중을 비행하는 수송수단이기 때문에 추락사고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수십년간의 항공기 운항의 경험과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항공기는 운송수단중 가장 안전한 것으로 정평나 있다.

이렇게 안전한 문명의 이기인 항공기사고의 원인은 크게 기계적 요소와 인적 요소로 구분된다.

기계적 요소는 항공기 자체의 결함, 항공기의 운항을 지원하는 지상항행 보조시설을 들 수 있으며, 인적 요인으로는 항공기를 조종하는 조종사와 항공기에 가해지는 외부로부터의 테러를 들 수 있다.

어제 새벽 괌에서 착륙중 추락한 대한항공 B747항공기의 사고 요인은 철저한 사고조사를 통해 밝혀질 수 있을 것이나 사고 당시의 여러 정황들을 미루어 앞서 열거한 요인들중의 하나로 추측해 볼 수 있겠다.

사고 당시 괌공항의 기상은 태풍을 앞둔 상태로 강한 바람이 불고 있었으며, 새벽이라 조종사의 시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악조건이었다.

더구나 보도된 바에 따르면 괌공항의 계기착륙장치 (ILS:Instrument Landing System)가 고장 나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런 비행조건하에서 위에서 언급한 각 사고요인들의 가능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고의 원인이 항공기 자체의 결함일 수가 있는데 항공기 전체 사고요인중 항공기결함에 의한 사고가 20%미만일 정도로 현대의 항공기는 신뢰성이 높으므로 이것이 사고의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더욱이 그간 국내 항공기의 사고가 항공기의 결함 또는 정비불량으로 발생한 사례가 거의 없다.

둘째, 지상항행 보조시설의 고장이다.

대형 첨단항공기에 장착된 자동착륙장치는 지상에서 보내주는 신호를 이용해 항공기에 탑재된 자동비행장치가 시계 제로인 상태에서도 활주로의 착륙지점에 항공기가 정확히 착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장비다.

야간과 같이 계기비행 상황하에서 조종사들은 항공기의 계기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만약 계기가 잘못된 신호를 보낼 경우 이를 알아차리기가 몹시 어려우며, 특히 착륙시는 고도가 낮기 때문에 조종사가 대응할 시간적 여유가 없으므로 항공기는 매우 위험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

93년7월 목포의 국내선 여객기 추락사고가 나쁜 기상상태하에서 계기착륙시설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목포비행장에 무리하게 착륙하다가 발생한 것을 상기하면 이 두번째 요인이 사고의 원인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셋째, 항공기의 사고원인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조종사의 과실을 생각할 수 있다.

이는 기장 또는 부기장의 판단착오로 인한 실수나 두 조종사간의 정보교환이 잘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94년 국내선 항공기가 제주공항에서 착륙후 활주로를 벗어나 항공기를 전소시킨 사고가 대표적인 것으로, 이때 외국인 기장과 한국인 부기장간의 의사소통부족으로 인한 부적절한 비행조작이 직접적인 사고 원인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마지막의 항공기 사고 요인으로는 폭발물을 이용한 테러가 있을 수 있는데, 이것에 대한 가능성은 기술적이라기 보다 정치적인 것으로 그 가능성을 점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통상 테러는 그 증거의 인멸을 위해 순항중에 자행하는 것이 보통이므로 착륙중에 사고가 발생한 대한항공 B747기의 사고원인으로 보기에는 부적절하다 하겠다.

이상과 같이 사고의 요인별로 그 가능성을 예측해 보았지만 정확한 사고조사의 결과가 나올때까지는 그 누구도 사고의 원인을 단정할 수 없고, 권위있는 사고조사 결과보고서가 발표될 때까지는 우리 모두가 인내를 갖고 기다려야 할 것이다.

항공기의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것은 몇주에서부터 수년이 걸리는 수도 있으며 영원히 그 원인을 밝히지 못하는 수도 있다.

그러나 사고의 원인을 밝히는 것은 그 책임의 소재를 분명히 해 또다른 사고를 예방하고 소중한 인명을 보호하는 중요한 행위이므로 관련 당국은 철저한 조사를 실시해야 할 것이다.

鄭弘澈 <한국항공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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