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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태·정동영의 출마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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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와 정동영 전 민주당 대통령후보가 4월 재·보선 출마를 고민하고 있다 한다. 설(說)을 적극적으로 부인하지 않는 걸로 보아 출마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두 사람이 공천을 신청하거나 당이 두 사람을 공천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정치적 자유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자유만큼 중요한 것이 원칙과 명분 아닐까. 두 사람의 출마 문제엔 한국 사회가 짚어봐야 할 부분이 여럿 있다.

박 대표는 고향인 경남 남해·하동에서 1988년부터 내리 5선을 기록했다. 무려 20년 동안 고향 사람들과 애정을 주고받은 것이다. 그는 국가와 고향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약속했고, 유권자는 5선으로 밀어주었다. 박희태는 국회부의장과 당 대표를 지낼 정도로 중앙 무대에서 활약했다. 그런데 지난해 4월 한나라당은 그런 박희태에게 공천을 주지 않았다. 국회의장 후보로 거론되는 5선을 내치면서 당은 국민에게 일언반구 설명도 하지 않았다. 박은 바닷가에 앉아 있다가 낙천이란 벼락소리를 들었다.  

당은 원로를 그런 식으로 뭉개놓고는 지난해 7월엔 다시 손을 잡았다. 전당대회에서 그를 대표로 뽑은 것이다. 당 밖에선 “공천을 받지 못한 사람이 웬 당 대표냐”는 소리가 무성했다. 그러나 대의원들은 계파 갈등을 아우를 적임자라며 박희태의 효용(效用)을 샀다. 그랬던 당에서 지금 와선 집권당을 이끌려면 역시 원내라는 배지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당론은 아니지만 주류 측 많은 이가 그렇게 말을 하고 박 대표도 부인하지 않는다. 당은 그렇게 중요한 인물이라면 왜 낙천했던 것이며, 그렇게 ‘배지 대표’가 필요하다면 왜 원외를 대표로 뽑았는가. 하는 일이 이렇게 원칙이 없으니 한나라당은 의사당에서도 갈피를 못 잡는 것이다.

원칙 문제도 그렇지만 전략으로 봐서도 박희태 출마는 당에 현명한 선택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가뜩이나 야당은 재·보선을 이명박 정권에 대한 심판이라고 벼르는데 집권당 대표가 출마하면 부채질하는 게 된다. 김대중(DJ) 대통령의 집권 1년 반 만에 여당의 조세형 총재권한대행이 경기도 광명 보선에 출마했다. DJ 정권은 간판급 거물을 통해 정국 주도권을 잡으려 했지만 조 대표는 광명시장을 지낸 여성 초년병 전재희에게 고전했다. 이기긴 했지만 표 차가 겨우 1300여 표였다. 박 대표가 이런 일을 겪지 않으려면 수도권을 피해 경남을 택해야 하는데 그곳이라고 안심할 수는 없다.

당의 문제도 있지만 정치인 박희태로서 고뇌해야 할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는 재·보선을 통해 6선이 되면 차기 국회의장 후보로 거론될 수 있다. 수십 년간 정치를 한 사람으로서 그런 황금빛 클라이맥스를 외면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가 ‘5선 지역구’를 떠나 다른 곳으로 옮기면 뚜렷한 명분 없이 지역구를 갈아타는 후진적 관행에 사례 하나를 추가하는 게 된다. 그가 자신의 6선을 위해 다른 곳으로 가면 남해·하동의 20년 애착은 무엇이 될까.  

정동영 전 민주당 대통령후보는 96년부터 고향인 전주 덕진에서 2선을 기록하며 정치적으로 성장했다. 민주당은 2007년 대선에서 참패했으며 지난해 4월 총선 때는 생사의 기로에 처했다. 당은 기사회생의 바람을 위해 정동영과 손학규라는 스타가 서울서 뛰어주기를 요망했다. 정동영은 동작을에서 정몽준과, 손학규는 종로에서 박진과 일합(一合)을 겨루었다. 두 사람은 패했지만 명분 있는 패장이었다.

정동영의 서울 출마가 의미 있었던 것은 따뜻한 아랫목(전주)을 버리고 당을 위해 차가운 윗목을 택했기 때문이다. 정동영은 이명박·정몽준 같은 거물 적장과 일전을 겨루었던 민주당의 대표 장수다. 그런 그가 뚜렷한 명분 없이 다시 옛날의 아랫목을 택한다면 당의 기개(氣槪)는 어디로 가는가. 손학규는 박진에게 패한 뒤 춘천 농가에 내려가 때를 기다리고 있다. 그의 기다림이 더 옳은 게 아닐까.

김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