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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지도>58. 세계연극제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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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 95년 6월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개최된 제26차 ITI (국제극예술협회) 총회는 한국 연극사에 반드시 기록돼야 할 뜻깊은 행사였다.

이유는 두가지 점에서다.

이 행사를 통해 처음으로 국내인물이 세계연극계의 수장 (首長) 으로 추대됐다.

그 주인공은 최근 중앙대에서 정년퇴임한 연극연출가 김정옥 (65) 씨다.

30년 넘게 극단 자유를 이끌면서 명문극단으로 키워온 한국 현대연극의 산증인이자 우리연극의 세계무대 진출을 앞장서서 개척해온 주인공이다.

최근들어 그 영향력이 많이 약화되긴 했지만 ITI는 아직도 세계 공연예술분야를 대표하는 유일한 유네스코 산하단체. 때문에 이 단체의 세계본부회장이 한국인이란 사실은 우리 공연계의 대단한 긍지로 삼을 만한 일이다.

오는 9월1일부터 10월15일까지 서울과 과천등지에서 열리게 될 '세계연극제97 서울/경기' 는 이때 ITI총회의 정식 인준을 받고 결정됐다.

김씨의 본부 회장 확정과 함께 세계 연극인들의 서울회동이 결정됨으로써 한국은 명실상부한 세계연극의 중심축으로 등장하게 됐다.

이런 절호의 기회를 만난 때문인지 제27차 ITI 세계총회와 함께 열리는 가을 '세계연극제' 의 규모는 이름에 걸맞게 가히 '세계적' 이다.

이 기간동안 공연될 작품만도 24개국 30여개 단체의 총1백여개에 이르며, 그럴듯한 타이틀을 단 부대행사도 셀 수없이 많다.

다른 나라에서 열렸던 ITI총회때도 이런 규모의 행사는 없었다.

연극과 무용.음악등 인접 장르가 어울려 축제형식으로 진행되는 아비뇽이나 에든버러 페스티벌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양적인 범람이 두드러진다.

이번 '세계연극제' 의 각종 세부행사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해외초청공연 = '세계연극제' 의 하이라이트 성격의 이 행사에는 세계 각국의 16개 저명한 연극단체가 참가해 9월1일부터 29일까지 국립극장과 문예회관.토월극장.자유소극장등에서 공연한다.

공연작은 그리스 아티스극단의 '안티고네' 를 비롯, 베네수엘라 라하타블라극단의 '아무도 대령에게 연락하지 않는다' , 중국 상하이화극원의 '야종 (野種)' , 일본 신주쿠양산박의 '맹도견' , 아이슬란드 반다멘극단의 '암로디 사가' , 미국 라마마극단의 '트로이의 연인들' , 캐나다 레데몽극단의 '약속의 땅' 등이다.

신주쿠양산박을 제외하고 국내 초연이 대부분이지만 조직위원회는 각국을 대표할만한 수준급이라고 밝혔다.

대부분의 참가단체는 조직위로부터 체재비와 회당 공연료 (평균 2천~3천달러) , 일비 (60달러) 등을 제공받는다.

▶해외초청 무용.음악극 = 미국.독일.헝가리.프랑스등 4개국 5개단체가 초대된다.

9월1일부터 10월8일까지. 독일 샤샤왈츠무용단의 '우주비행사의 골목' , 헝가리 이베트보직무용단의 '두개의 초상' , 프랑스 마기마랭무용단의 '메이비' '워터주이' , 미국 뉴욕시티발레단의 '교차' 외 5편, 역시 미국 메레디스 몽크의 '콘서트' 등이 선보인다.

뉴욕시티발레단 내한공연은 애당초 예술의전당 기획물인데 마침 '세계연극제' 와 기간이 겹쳐 연극제 행사로 편입된 경우다.

▶국내초청연극 = 해외작품과 겨루기 위한 회심의 카드로 국내의 유명 레퍼토리를 모았다.

산울림.학전블루.동숭스튜디오등 주로 소극장에서 열리는데, 대부분이 90년 전후 공연돼 호평을 받았던 작품들로 짰다.

'산씻김' (이현화작.채윤일연출) , '고도를 기다리며' (베케트원작.임영웅연출) , '맹진사댁 경사' (오영진작.김상열연출) , '오구' (이윤택작.연출) , '오장군의 발톱' (박조열작.손진책연출) 등 10개 작품이 출품된다.

▶세계 마당극 큰잔치 = 해외초청작 9편과 국내초청작 12편등 총 21개 단체가 참가한다.

9월9일부터 28일까지 경기도 과천시민회관과 야외공연장등에서 열린다.

해외 유명단체로는 콜롬비아 티에르극단, 필리핀 칼리와트극단, 영국 아방티 디스플레이극단, 러시아 돈 코사크 송 앤 댄스 앙상블, 인도네시아의 렌드라극단, 태국 마캄퐁극단등을 꼽을 수 있다.

민예극단.길라잡이.한강.아리랑등이 국내 대표로 참여한다.

▶서울연극제 = 매년 이맘때 열리는 연극계의 연례행사로 현대 한국연극의 흐름을 세계인들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로 삼고자 '세계연극제' 에 포함시켰다.

특별초청작 '불의 가면' (이윤택작.조구환연출) 을 비롯해 '지피족들' (기국서각색.박근형연출) , '남자충동' (조광화작.연출) , '평화씨!' (이상우작.연출) , '택시드리벌' (장진작.연출) 등 비교적 최근에 공연됐던 작품들이 선보인다.

▶이같은 행사외에도 '세계연극제' 기간중 총회 (9월14~20일, 서울 올림픽파크텔) 및 심포지엄, 워크숍, 전시회, 세계대학연극축제등 부대공연이 동시다발로 열려 마치 '연극 올림픽' 을 방불케 할 전망이다.

이번 '세계연극제' 의 예산규모는 25억원 정도. 당초 조직위는 40억원 규모로 예산을 잡고 기업체 후원금을 얻어내려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경기불황으로 이것이 여의치않자 국고와 지방자치단체 (경기도와 과천시) 의 지원금으로 충당하게 됐다.

조직위는 이처럼 빠듯한 예산에도 불구하고 국내외 관객 5만명 (외국인 관람객 1만명) 동원을 목표로 잡고 조직을 풀가동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대형 행사가 앞으로 국내의 연극관객 개발에 결정적일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조직위는 티켓전산망을 개발, 시험운용을 거쳐 8월2일부터 본격 가동할 방침이다.

'티켓네트' 로 이름붙여진 이 전산망을 이용하면 반드시 해당 공연장에 가지 않더라도 대학로와 신촌.과천등지에 설치된 30여개소의 단말기에서 어떤 티켓이라도 구입이 가능하다.

조직위는 이번 '세계연극제' 의 기대 효과로 크게 4가지를 꼽는다.

세계인들에게 한국 공연예술의 정수를 현장에서 체험시킴으로써 서울을 동북아는 물론 아시아.태평양지역 예술교류의 중심축으로 키운다는 게 첫번째 목표. 다음으로 국민전체 문화향수권의 신장과 안목을 키우며, 세번째로 문화와 기업을 접목시켜 문화산업화의 길을 트고 이를 발판으로 취약한 우리 공연시설물의 확충.보완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대효과가 목표치만큼 달성될 지는 정말로 미지수다.

가장 큰 걸림돌은 짧은 기간동안 공연물량이 너무 많아 과연 관람객들이 어떤 작품을 봐야할 지 도무지 '교통정리' 가 안된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여타 '한탕주의식' 대형행사가 그렇듯 이번 '세계연극제' 도 내실보다는 다분히 보여주기 위한 행사가 아니냐는 일각의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때문이다.

조직위는 14일 개막 50일을 앞두고 무주리조트에서 연극인 한마음 결의대회를 가졌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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