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보고세로읽기>실속없이 한눈팔면 삶은 거품으로 가득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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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그 유명한 이브 몽탕이 부른 '고엽' 이 생각난다.

"…인생을 사랑하던 사람들을/어느샌가 소리도 없이/갈라놓아 버리고/바다는 헤어진 사람들의 발자욱을 지워버리네/고엽은 삽에 그러담기는데/추억도 후회도 그러담기는데/그러나 말없고 변함없는 내 사랑은/언제나 웃으며 삶에 감사하네/내 그대를 얼마나 사랑했던가.

" 가사를 만든 자크 프레베르는 참 많은 사람들이 사랑했다.

오늘 만나는 사진작가 로베르 두아노 (프랑스.1912~) 도 그중 한사람이다.

그의 사진은 프레베르의 시처럼 따뜻하고 순수하다.

1930년대엔 잠시 공업사진가로, 보도기자로도 일했던 그는 인간의 참모습을 가식적인 연출 없이 훌륭하게 찍었다.

프레베르가 건네는 일화가 있다.

트럭이 양떼를 치었을 때 그는 사진을 찍지 않고 목동을 위로했다고 한다.

"무엇이건 닥치는 대로 이용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뚫고 들어가서는 안될 은밀한 영역이 있다고 믿습니다.

" 파리 사람들은 그를 존경했다.

그의 모델이 되길 원했고 그것을 영광으로 여겼다.

그의 키스하는 사진은 어디서나 자주 눈에 띌 만큼 유명하다.

또 다른 사진은 한 여성과 동행한 남편쯤으로 보이는 엉큼한 사내가 한눈을 팔고 있다.

한눈 파는 사내는 얄밉지만 한눈 파는 사람의 본성은 이해한다.

"사내는 악성종양에 걸릴 것이다.

" 이렇게 내가 사진 속의 남자에게 속삭이자 한눈 팔던 사내가 연인에게 돌아간다.

이렇게 만사형통하면 좋으련만. 실속없이 한눈을 팔면 삶은 거품으로 가득차게 마련이다.

우리나라의 현재 모습이 그렇다.

현정권의 세계화.일류화 강조로 겉멋만 잔뜩 들었다.

쓰레기로 버려질 포장만 요란한 꽃다발을 보자. 거리의 외제 자동차 행렬은 어떤가.

광고에도 꼭 외국스타를 등장시켜야 하는가.

멕 라이언.시퍼 등에게 무시당하면서까지…. 어딜봐도 건물부터 옷차림까지 우리 냄새가 드물다.

우리만의 개성이라곤 태부족이다.

이것은 관광산업을 추락시키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지자제 실시 이후 마구잡이 개발이 가속화되어 도시 모양새도 우습게 바뀌고 환경파괴는 심각하다.

개발논리에 따라 소중한 유산을 뭉개는 몰상식을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지난 4월 나는 내린천엘 갔다.

이렇게 푸르고 아름다운 땅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하지만 그것은 곧 망가진다지. 내린천 댐 건설을 피해가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나라를 이끄는 자들의 근시안적 안목이 원망스럽다.

그들은 정녕 환경 대재앙을 부르는 일만 저지를 건가. 신현림 (시인)

<사진설명>

로베르 두아노작 '시청앞 광장'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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