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무대'지키는 '흰머리 부대' 10년 단골팬 수두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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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유정주(81.서울노원구상계동)할머니는

'오빠 부대'를 뺨치는'흰머리 부대'의 핵심 멤버다.물론 유할머니가 여느 10대들처럼

신세대 가수들이 주인공인 가요 프로그램

공개방송 현장에서 한껏 고함을 지르는

것은 아니다.

유할머니는 매주 월요일이면 어김없이 서울여의도 KBS공개홀의 '가요무대'녹화현장에 고운 한복과 쪽진 머리 차림으로 모습을 나타낸다.벌써 11년째.“바깥 양반 돌아가신 86년부터 오기 시작했어.그동안 5번밖에 안 빠졌지.단풍놀이 가느라고.”그 어느 10대도 보일 수 없는 열렬함이다.

팔순을 넘었건만 유할머니는 녹화가

진행되는 동안 열심히 박수로 장단을 맞추고

어깨를 흔들며 가수들의 노래를

따라 부른다.

유할머니는 유난히 카메라에 잡히는'좋은 자리'에 집착한다.40년전 미국으로 이민간 오빠 유봉학(85)씨 때문이다.늘 가요무대를 보는 오빠는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어디 아프냐'고 전화를 건다.

유할머니는'껌 할머니'로도 통한다.제작진은 물론 공개홀을 지키는 사람들까지 유할머니에게 껌을 받아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

11년 단골이다보니 몇몇 가수들과도 친해졌다.“'껌 할머니'하면 조용필.진송남도 알아.”'가요무대'는 유할머니 외에도 많은'흰머리 부대'를 거느리고 있다.'흰머리 부대'대원중에는 가끔씩 가수를 만나러 출연자 대기실에 진입하려다 제작진에 저지당하는 극성파도 있다.

유할머니가 이들 오빠부대의 대장격이라면 부관 자리는 '꽃아주머니'오경자(58.서대문구충정로3가)씨의 몫이다.10년동안 가요무대 녹화현장을 지킨 그는 유할머니와도 얼굴을 익혀 이젠 스스럼 없이'어머니'라 부르는 사이가 됐다.

오씨는 가끔 꽃을 가수와 제작진들에게 나누어주곤 한다.처음에는 김동건 아나운서의 테이블 위에 놓으려 꽃을 사왔다.그러나 그날은 녹화가 시작된 뒤 늦게 방송사에 도착했다.

결국 꽃다발은 그날 나온 가수 황금심씨에게 돌아갔다.그럴 수 없이 좋아하던 황씨의 모습이 오씨가 가끔 꽃을 사게 만들었고 그 꽃들은 제작진과 가수들에게 골고루 나뉘어지곤 한다.

지난달 초에는 노래를 들으며 섧게 울던 그의 모습에 오랫동안 카메라가 고정됐다.노래는 황덕순씨의'미망인 엘레지'였다.

“태권도 보급을 한다며 남편이 멕시코로 떠난 지 벌써 24년이 지났군요.80년 '과테말라로 간다'는 말 이후는 아무 소식이 없어요.” 남편 생각이 3년전 외동딸을 시집보내고 홀로 살고 있는 그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것이다.

95년말부터 연출자를 도와 가요무대를 진행하는 유원상(23)씨는 “늘 리허설만 보고는'일하러 가야한다'며 사라지는 50대 초반의 아저씨도 있습니다.한 10명쯤은 개근이고 자주 오시는 분들은 셀 수 없지요.”라며'흰머리 부대'의 실체를 밝혔다. 권혁주 기자

<사진설명>

◀ 유정주할머니(좌)와 오경자씨.두 사람 모두 10년 이상 가요무대를 방청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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