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슈포럼>예산 - 정부도 책임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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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예산이 선심성.정치성 사업으로 왜곡되는 것은 정치권만의 책임인가.국회쪽의 분위기는“우리만 오명을 쓰는건 억울하다”는 쪽이다.

오히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정부가 미리'과천에서부터 기는'행태도 많다고 지적하고 있다.정밀한 심사없이 대외적 명분에 휩쓸려 '예산 과소비'에 앞장서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게 건국이래 최대사업이라는 경부고속철도 사업.노태우(盧泰愚)정권 후반부에 입안,착공돼 지금 숱한 부실이 드러나면서 애물단지로 전락할 형편이다.공사비 규모도 현재는 당초 예상보다 3배 이상 늘어난 20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농림부가 주도한 전국 2백여곳의 미곡종합처리장 사업도 대표적인 전시행정 사례.각 지역의 요구를 고루 충족시키다 보니 우리나라 전체 쌀생산량의 4배가 넘는 도정시설을 갖췄다.1천억원이 넘는 돈이 낭비됐다.

예산집행에서도 정부의 무원칙과 월권이 상당하다.지난 94년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해외순방중 '세계화'를 외치자 각 부처가 이런저런 예산을 몽땅 편법으로 전용해 공무원들의 해외연수를 크게 늘렸다.당시 예결위에서 민주당 박석무(朴錫武)의원이“정식으로 예산을 요구해 통과된뒤 보내야지 정부의 전횡이 너무 심하다”고 꾸짖었다.공무원들의 이기주의도 예산을 좀먹는다.총무처 집계로는 올해 현재 뚜렷한 보직을 받지 못하고 국내외 연수와 파견으로 전전하는'인공위성'공무원이 1천5백명에 이른다.이들의 인건비.해외체류비중 상당액은 낭비라고 할 수 있다.

예산과 관련해 의원들이 문제삼은 또하나의 문제는 정부의'능력'이다.올해 예산의 경우 96년말 예결위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의원들이 세수(稅收)부족을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4조원에 이르는 사상 최대의 결손이 예상되고 있다.

국민회의 김원길(金元吉)정책위의장은“야당의원들은 경제성장률에 물가상승률을 보탠 9%선에서 증가율을 책정해야 한다고 했으나 정부가 한사코 우겨 예산총액이 13.4%나 늘어났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이미 시행에 들어간 사업의 예산배정까지 재검토해야 할 형편이다.

인건비.판공비.경상경비등 경직성 경비지출을 줄이기 위한 정부의 노력 부족도 문제.국회 김병일(金炳日)예결위 전문위원은“최근 들어 경직성 경비의 하락추세가 눈에 띄게 낮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민간에 근검절약을 권장하기 앞서 정부부터 살을 빼려는 의지는 전혀 엿보이지 않는다는게 여의도의 분위기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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