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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조백일장>초대시조 - 자상의 한 집에 들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제 키만큼 키운 것들 더는 자라지 않을 때 버릴 것 비로소 다 버린 뒤 함께 울 때 아득한 봄 지나가고 인생은 헐거워졌다.

한 가족 아직 넉넉히 두 발 뻗을 방 한칸 그녀의 이쪽 저녁 달빛이 먼저 와 눕는 길 떠난 사람들 제 집 돌아오고 있을까. 나 아직 고단한 행보 계속해야 하리라 유월 가까이 목메올 신록의 띠를 붙잡고 한 생애 물들 수 없는 거친 잡목숲 지나 내 몫의 하루을 접고 지상의 한 집에 들다.

◇시작노트=무척 힘든 계절이다.아아,소리라도 크게 지르고 싶지만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올 것이 두렵다.뭔가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하지만 그저 무기력하게 아득한 봄을 보내고,또 새로운 계절을 맞았다.이제는 탈출구를 찾아 떠나고 싶다.그러나 이 계절 탈출구는 진정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나무들은 미치도록 푸르러 가는데…….

◇약력▶59년 광주출생.▶86년 사화집'지금 그리고 여기'를 통해 작품 활동 시작했으며,사화집으로'어둠은 어둠만 아니다''이 땅의 그리움을 알기 시작했다''세상에 저녁이 오면'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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